[글로벌 메가머저의 명과암] 中. 강화되는 규제 움직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미국 3대 방송사 가운데 하나인 NBC가 25일 미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청원을 냈다.

지난 1월 발표된 아메리카온라인(AOL)과 타임워너간 합병이 공정 경쟁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합병 자체를 승인하지 않거나, 승인하더라도 사업 영역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1주일 전에는 ABC의 모기업인 월트디즈니가 "AOL의 컨텐츠와 타임워너의 케이블 사업을 분리하지 않을 경우 양사 합병은 인터넷과 미디어 부문에서 독점을 야기한다" 며 FCC에 합병 재고를 요청했다.

메가머저는 관련 업계의 판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만큼 이해 당사자들의 저항도 거세다.

당국도 공룡 기업이 야기하는 독점 폐해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때로는 자국 산업보호를 명분으로 국가 차원에서 제동을 걸기도 한다.

◇ 반독점법에 따른 규제〓미국 2위와 3위의 장거리 전화회사인 월드컴과 스프린트는 지난 13일 합병을 철회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양사는 지난해 10월부터 합병을 추진해왔으나 미 법무부와 유럽연합(EU)집행위가 양사의 합병은 독점으로 이어져 요금 인상을 부추기고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손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월드컴과 스프린트가 합칠 경우 양사의 시장 점유율은 인터넷 접속서비스 부문에서 53%에 이르며, 국제전화 부문에서도 30%를 훌쩍 뛰어넘는다. 미국내 장거리전화 부문에서도 30%에 육박하게 된다.

유럽연합(EU)집행위는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에 대해서도 독점 가능성 여부를 조사중이다.

집행위는 양사가 합병하면 온라인 음악과 필름, TV프로그램, 금융뉴스 등을 좌지우지해 유럽 기업들의 피해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집행위는 올 10월까지 양사의 합병에 대한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승인이 떨어지지 않으면 양사는 합친다 하더라도 유럽내 영업이 불가능해진다.

기업간 전자상거래(B2B)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GM과 포드 등 세계 5대 자동차메이커가 공동설립한 자동차부품 온라인시장인 '코비신트(Covisint)' 역시 미 연방거래위(FTC)의 독점 조사를 받고 있다.

미국의 하니웰인터내셔널 등 3개사가 설립한 항공기 부품 및 엔진 전자상거래 업체인 '마이에어크래프트닷컴' 도 EU 집행위의 반독점 심사대에 올라 있다.

◇ 국가 차원의 보호장벽〓독일의 도이체텔레콤과 미국의 무선통신업체인 보이스스트림 간의 5백7억달러 규모의 합병은 현재 미국내에서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있다.

미 의회가 이들 업체의 합병을 저지하기 위한 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새 법은 정부 지분이 25% 이상인 외국 통신관련 업체의 미국 통신업체 인수를 금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도이체텔레콤은 독일정부의 지분이 58%에 이른다.

양사가 합병할 경우 미국은 도이체텔레콤에 미국내 무선사업 허가를 내주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미국 무선시장을 유럽업체에 잠식당할 가능성이 크다.

독일의 만네스만을 인수함으로써 세계 최대의 무선통신업체로 등장한 영국의 보다폰 에어터치가 이미 미국 시장을 넘보고 있는 판에 도이체텔레콤까지 가세할 경우 자국 업체들의 입지가 좁아진다. 미 의회는 이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와 관련, 24일 "개방과 자유무역을 신봉하는 미국의 무역정책이 인터넷 보호무역주의로 흐르는 첫 징조" 라고 비꼬았다.

도이체텔레콤은 현재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클린턴 현 대통령의 백악관 자문역을 맡았던 로이트 커틀터를 고용해 미 정가를 상대로 대대적인 로비전을 펼치고 있다.

보다폰 에어터치의 만네스만 합병도 당초 자국의 무선통신업체를 외국에 내줄수 없다는 독일의 반발로 수개월동안 교착상태를 겪어야 했다.

양국 수상들의 설전으로까지 이어졌던 양사 합병은 결국 EU 집행위의 중재로 합의를 끌어 냈지만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다.

◇ 소비자들의 반발〓미 소비자동맹은 지난달 AT&T와 미디어원간의 합병이 케이블TV시장의 독점을 야기할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조사를 촉구했다.

미디어원이 타임워너 엔터테인먼트 지분의 25%를 소유하고 있어 미국 최대 통신사인 AT&T가 이를 이용해 케이블사업을 통제하고 독점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연맹은 또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도 케이블TV와 콘텐츠시장의 독점을 야기, 결과적으로 시청료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며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도록 FTC에 요구했다.

최형규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