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기획] “국내는 비좁다” 체력 회복한 금융사들 해외서 빅매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 2008년 미래에셋자산운용 인도법인은 2개의 펀드를 출시했다. 현지에서 직접 펀드를 만들어 인도 고객에게 팔았다. 전국에서 4만여 명의 가입자를 모았다. 그러다 지난해 말 금융위기로 2만 포인트에 달했던 주가가 8000 선까지 추락했다.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금융위기 1년이 지난 지금, 첫 상품인 ‘인디아 오퍼튜니티 펀드’는 주식성장형 부문에서 수익률 최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주가가 떨어질 때 주식 비중을 확 줄인 다른 인도 자산운용사들과는 달리 미래에셋은 장기 투자의 관점에서 주식 비중을 크게 줄이지 않은 덕이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금융위기로 ‘휴업’에 들어갔던 국내 금융회사들의 해외시장 공략이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은행·보험·증권 등 권역을 불문하고 해외시장 진출을 올해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세계화’의 구호가 한창이던 1990년대 중반에도 금융회사들은 해외로 몰려나갔다. 97년 말 국내은행의 해외 점포는 257개로 2009년 9월 말(132개)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닥치자 해외 점포는 급속히 쪼그라들었다.

외환위기 이후 체력을 다진 금융회사들이 다시 해외시장의 문을 두드린 게 2005년 이후. 그러나 이번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목을 잡았다.

이런 곡절을 거친 다음의 해외 진출은 여러 측면에서 과거와 달라졌다. 구색 맞추기용이 아니라 해외로 나가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절박감이 배어난다. 또 미주·유럽 중심에서 아시아권으로 해외 진출의 무게중심이 이동한 것도 달라진 점이다.

◆해외 진출은 생존 전략=금융사들이 해외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국내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경우 최근 수년간 자산경쟁에 몰두하면서 몸집 불리기에 나섰지만 이젠 한계다.

2009년 1~9월에 국내 시중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1.97%다. 대출이자 수입이 1000원일 경우 예금이자를 제하고 나면 남는 이자수입이 19.7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특히 내년부터는 예대율 규제가 도입되고, 유동성비율 등 금융규제가 강화된다. 돈 벌기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보험·금융투자(증권·자산운용) 등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 칸막이가 사라지면서 영업기회는 늘어났지만 업체수가 늘어나면서 개별 회사 입장에선 더욱 치열한 경쟁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해외 진출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도 국내 금융사가 해외 진출을 서두르는 요인 중 하나다. 문호성 기업은행 중국 법인장은 “은행 입장에서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이전은 고객 기반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기존 고객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승부수는 아시아에서=중국 소재 해외 점포는 55개로 미국(49개)을 추월했다. 베트남에도 일본(29개)보다 많은 34개 해외 점포가 문을 열었다. 인도·카자흐스탄·인도네시아 등도 국내 금융사가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시장이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은행을 인수하겠다고 했고, 윤용로 기업은행장은 중국 지점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베트남 호찌민 소재 증권사인 자팟의 부 유이 탄 부사장은 “한국 금융사들이 문화적 동질성이 강한 아시아권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은 올바른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경우 땅이 넓다 보니 회사별로 공략 지역이 차별화돼 있다. 하나은행은 중국 동포들의 기반이 튼튼한 동북 3성과 산둥성, 기업은행은 한국 기업들이 많은 톈진과 칭다오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베트남에선 신한은행이 일찍이 자리를 잡았다. 신한은 현지기업과 합작회사인 신한비나은행 이외에 최근 현지법인인 신한베트남은행을 설립, 영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최근엔 대한생명이 베트남 생보시장에 뛰어들어 실적을 쌓고 있다. 인도에선 미래에셋자산운용이 현지 펀드 시장을 개척하고 있고, 캄보디아에선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경쟁하고 있다.

특별취재팀=김준현·김원배·김영훈·조민근·박현영·한애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