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동아건설 주주총회장 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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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1일 오전 9시40분쯤 서울 서소문 동아건설 5층 대강당. 10시로 예정된 이 회사 임시 주주총회장에 느닷없이 기능직 중심의 동아건설 노동조합원 50여명이 몰려들었다.

주총장 단상 바로 앞에 자리잡은 이들은 '최원석' 을 연호했다. 최원석씨는 1998년 경영부실에 대해 책임지고 물러난 동아건설의 전 회장으로, 측근들이 다시 회장으로 모시겠다며 지난달 말 경영진 공모에 대리 신청했다.

주총은 소란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10분만에 중단됐다. 주총장은 50여명의 고함소리에 묻혀 맥을 못추었다.

임원들은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직원들에게 "뭐하는 거냐, 막아라" 고 호령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는 거의 없었다.

결국 황창기 이사회 의장이 정회를 선언했고, 한시간 반동안 주총을 속개하지 못했다. 주총을 보러 온 소액주주들은 하나둘 빠져나갔다.

오전 11시40분쯤 黃의장을 비롯해 임원과 직원들 대여섯명이 총회장 구석에 모였다. 임직원의 보호를 받은 黃의장은 핸드마이크로 '내정된 임원의 선임안을 통과시킨다' 고 선언한 뒤 서둘러 빠져나갔다. 최동섭 회장을 비롯해 임원 12명을 선임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초 정도였다.

이 광경을 지켜본 한 소액주주는 "응모하지도 않은 인물을 새 회장으로 정한 임원 선임과정도 문제지만 실패한 경영인의 복귀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고 말했다.

이날 일방통행식 안건 통과는 아무래도 앞으로 새 경영진이 추진할 경영 정상화와 노사화합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것 같다. 이사회 의장이 정회를 선포하고 소액주주들이 대부분 자리를 비운 사이 기습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동아건설측은 채권단 지분이 절반을 넘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동아건설은 최근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등으로 도마 위에 오른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다.

정치자금 제공 의혹으로 물러난 고병우 전 회장 후임으로 새 회장을 선임한 것인데, 그 과정이 이래가지고서야 어떻게 기업을 앞으로 말 그대로 개선시킬 것인지 자못 걱정스럽다.

황성근 산업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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