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미용스타일을 개발하는 것이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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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전남 나주 전남미용고등학교에 고민거리 하나가 생겼다. 미용 특성화고등학교다 보니 전교생이 여학생 뿐인데 난데없이(?) 남학생 한명이 지원을 한 것이다. 1967년 영산포여자종합고등학교로 학교가 설립된 이래 남학생이 지원한 것은 처음이었다.

지난해 학교가 특성화 고등학교로 개편된 이후 교칙에는 남학생 지원을 막을 규정은 사라졌다.이미 남성용 화장실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남학생이 지원하고 보니 입학여부를 놓고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200여명이 넘는 여학생 틈바구니에서 남학생 한명이 수업을 잘 따라올 수 있을까. 자칫 수업분위기를 흐리지는 않을까. 아니면 여학생들에게 따돌림 당해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시기 상처나 입지 않을까, 등등.

김인숙 교장과 20여 교사들은 고민끝에 '원칙대로 해보자'는 원칙을 세웠다. 예단을 버리고 입학시험 성적대로 하자는 것이었다. 미용은 여성만이 한다는 고정관념이 자칫 미래의 위대한 한 미용사의 날개를 꺾을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험성적을 보니 그는 합격자중 중상위권 이었다. 미용과 1년 김경열 군(사진)은 이렇게 전남미용고의 청일점이 됐다.

1학기가 지난 지금 김군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교사들의 걱정대로 좌절하고 있지나 않을까.

(여학생들 뿐인데)쑥스럽지 않나요?

"재미있는데요. 제가 원해서 하는 건데. 모든게 좋아요."

무슨 노인네처럼 천천히 원론적인 답변을 하고 만다. 다시 물었다.

여학생들이 놀리지는 않아요.

"아뇨. 다 친한 친구들인데요 뭐. 남자친구들 처럼 잘 도와줘요. 여자가 아니고 같은 반 학생이라 생각하면 돼요."

요즘 애(?)들은 다 이런가. 기자는 좀 머쓱해진 마음을 달래보려 또 질문을 던졌다.

그래도 일반계 고등학교로 간 남자친구들은 놀릴것 같은데.

"반반정도예요. 반은 부럽다고 하고 반은 남자가 쪽 팔리게 뭐하는거냐고 해요.그러나 전 개의치 않아요. 제 인생은 제가 사는건데 친구들 몇명 얘기에 신경쓸 필요 없지요. 제 스타일대로 살거예요."이 정도면 거의 세상을 달관한 경지(?)의 답변이다.

절반의 친구들이 부럽다고 한 이유가 뭔가요.

"그 친구들도 원하는 것 공부하고 싶은데 부모님 강요(?)도 있고 대학가야 제대로 사는 것 같고 그래서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접고 산다고 해요.근데 전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제가 원하는 미용고등학교로 진학하니까 그 소신이 부럽다는 거죠. 100년 사는 인생도 아닌데 왜 부모의 강요나 체면같은 것 생각하면서 사는지 모르겠어요."

김군이 미용고를 지원하게 된 것은 우연도 아니고 그렇다고 의도적인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분야를 찾아갔을 뿐이다. 중학생 시절 그는 얼굴에 화장하는 것을 좋아했다. 얼굴에 파운데이션 바르고 눈썹도 그려봤다. 입술은 칠하지 않았다.

화장 자체에 관심이 있었지 여장남자라는 가혹한 놀림을 당하기 싫어서다.

처음엔 부모님에게 들킬까봐 학교가기전 몰래 화장하고 집에돌아와 화장을 지웠다. 꼬리가 길면 언젠가 잡히는 법. 한달도 안돼 어머니께 들켰다. 물론 혼이났다. 그러나 그는 화장을 해보고 싶어 안달이 나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께 졸랐다. 나중에 미용사로 성공하고 싶은데 내가 화장을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처음에 그렇게 반대하던 어머니도 나중에 진하지 않는 정도의 화장을 허락했다.

이 대목에서 궁금했다. 김군의 아버지가 어떻게 아들이 화장하는 걸 허용했을까.

"사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잡혀사시거든요." 녀석은 겸연쩍게 웃으며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미용고에 원서를 냈을때 강력한 후원자는 엄마였다. 아빠는 처음에 반대하다 엄마가 설득하자 곧 찬성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김군의 화장은 사건이었다. 처음 몇일 반친구들이 놀리기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놀림은 얼마가지 않았다.

김군을 놀리던 친구들이 그의 답변을 듣고 감화(?)돼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싶은대로 한다. 내 스타일을 만들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고등학생이 된 후 그는 화장을 즐겨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날마다 화장을 했다 지우고 머리를 자르는 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화장을 하고 머리를 짜를때 그는 아무생각이 나지 않고 어떻게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만들까 하는 생각만 한다.

김교장은 "김군은 너무 착하고 성실해 예뻐 죽겠다"며 "원하는 공부를 하니 미래에 훌륭한 미용사로 성공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군에겐 소신이 있다. 말하자면 16세 소년의 가치관이다.

"꼭 대학을 가야만 한다는 어른들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어요. 내가 어떤 분야든 좋아하는 분야가 있다면 그 곳에서 일하고 돈벌고 또 공헌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자기 개성이나 특기를 제쳐놓고 대학만 갈려고 하는 애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물론 공부를 잘하면 성공할 길이 많지요. 그러나 전부는 아니잖아요. 전 제 스타일대로 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꿈을 물었다.

"저만의 미용스타일을 개발하고 실현하기 위한 미용실 사장이 되는거요.우리나라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스타일의 미용을 추구하는 미용사가 저의 꿈입니다."

나주=최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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