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말만 요란한 일본 인터넷 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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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에선 뭔가 새롭게 변신한다는 게 참 어려워 보인다.

얼마 전 일본전신전화(NTT)는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위해 종합정보통신망(ISDN)가입자 신청을 받았다.

더 빠른 인터넷 서비스를 위해 기자는 신청서를 냈고 한달 후 기자에게 날아온 NTT의 전화요금 청구서에는 설치비 10여만엔이 붙어 있었다. 우리 돈으로 1백만원이 넘는 엄청난 액수로 초고속인터넷을 신청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곧바로 항의해봤지만 "그것도 모르고 신청했느냐" 는 핀잔만 들었다.

요즘 일본에선 '인터넷' 열기가 한창이다.

정확히 말하면 인터넷보다는 '인터넷이라는 단어' 가 더 붐이다. 인터넷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인프라는 열악하면서 말만 요란하다는 것이다.

컴맹이 대부분인 정치인들이 더 시끄럽다. 모리 요시로 총리까지 나서서 e-메일과 인터넷 사용법을 배우고 있을 정도다. 총리는 PC를 조작하는 자신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까지 했다.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이 이를 보다못해 "총리는 키보드를 두드리기보다는 전략을 짜야 한다" 고 꼬집을 정도다.

미.일통신협상은 어떤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NTT의 접속료를 3년간 22.5% 내리기로 했지만 인터넷 사용료는 별로 변하지 않는다.

여기서 접속료란 장거리통신업자들이 NTT의 시내전화망을 빌릴 때 내는 돈이므로 인터넷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

인터넷 3분 사용하는 데 드는 전화료가 1엔 정도 싸질 뿐이다.

그나마 미국에 등을 떠밀려 내렸으면서 이를 계기로 일본이 본격적인 인터넷혁명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떠드는 사람도 있다.

더 가관인 것은 접속료 인하로 NTT가 올해 7백20억엔의 적자를 보게 됐다며 정부.정치권이 침통해 하고 있는 모습이다.

벌써부터 NTT의 경영 지원을 위해 지난해 동(東)과 서(西)로 분리한 NTT를 재통합하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경쟁촉진보다는 NTT 구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인터넷 사용자의 편익은 온데간데 없다.

인터넷 이용자들은 새로 바꾼 ISDN으로 본전을 뽑으려면 인터넷을 하루 24시간씩 몇년이나 더 써야 할지 모른다며 불평이 많다. 이게 정보화 시대를 앞둔 일본식 인터넷붐의 현주소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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