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연가 명쾌한 감정표현이 日 중년 주부 사로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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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위성방송 스카이퍼펙트에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공급하는 리포트코리아(무비무비서울)의 야마기시 유카(山岸由佳·32) PD

드라마 ‘겨울연가’(일본판 제목 ‘겨울 소나타’)와 ‘욘사마’(탤런트 배용준의 일본식 애칭)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 서점마다 배용준이 표지를 장식한 각종 사진집이 즐비하고, 액세서리 매장에는 폴라리스 목걸이가 걸려 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겨울연가’와 ‘욘사마’는 두드러진 유행 현상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음이 틀림없다. 한·일 양국이 ‘정치의 계절’을 넘어 ‘문화예술의 계절’로 접어들고 있는 반가운 신호다.

욘사마 열풍은 한국 관광으로 이어지고 있다.올해 일본인 15만명이 추가로 한국 관광에 나서 약 2000억원 이상의 관광 수입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올해 한국을 찾는 일본인은 300만명에 달할 전망이다.

그 열풍의 실체는 무엇일까. 일본 위성방송 스카이퍼펙트에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공급하는 리포트코리아(무비무비서울)의 야마기시 유카(山岸由佳·32) PD를 24일 만나 그 속내를 분석해봤다. 홋카이도 출신인 야마기시PD는 도쿄외국어대를 졸업하고 NHK에서 다큐멘터리 AE로 일하다 2001년부터 한국의 인기 드라마를 일본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는 방송 전문가다. 그와의 인터뷰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에서 유창한 한국말과 일본어, 때로는 영어를 통해 두 시간 정도 진행했다.

-현재 도쿄권역에서 방영된 한국 TV 드라마 가운데는 ‘겨울연가’뿐 아니라, ‘올인’(NHK 위성2) ‘진실’(TVK) ‘좋은 사람’(도쿄MXTV) 등이 있습니다.‘호텔리어’ ‘아름다운 날들’도 이미 방영됐지요.

그런데 왜 유독 ‘겨울연가’가 50, 60대 여성들에게 특별한 인기를 누리는 것일까요.

“일본에는 욘플루엔자(욘사마+인플루엔자의 복합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 대부분은 중년 이상의 주부들입니다. 이들은 일본 경제 부흥기인 70, 80년대 결혼을 한 세대입니다. 남편들은 모두 일 때문에 가정을 돌볼 틈이 없었습니다. 늘 집에서 혼자 애를 키우고 무표정한 남편을 대하면서 애정 표현은 꿈도 꾸지 못했던 결혼 생활이라고 할 수 있겠죠. 상당수가 성생활이 거의 없는 섹스리스 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겨울연가를 보면서 이들 주부들은 ‘나도 저런 사랑을 받아봤으면...’하는 동경속에 다시 한번 뜨거운 사랑을 해 보고 싶은 속내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회사때문에 가정을 버린 지금의 50, 60대 남자들이 욘사마 열풍을 만들어준 후견인 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욘사마 팬인 일본 주부 상당수가 남편과 함께 겨울연가를 보면서 따로따로 결혼 전 첫사랑을 생각했다는 조사도 나와 있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속성과 관련된 분석을 헤볼수 있지 않을까요?

“겨울연가 팬과 욘사마 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둘 다 좋아하는 경우는 50% 정도 된다고나 할까요. 겨울연가 인기에는 일본인의 속성 중 하나인 오타쿠(마니아의 일본말)와 이도바타가이기(井戶端會議:주부들이 우물가에 앉아 수다를 떠는 것을 빗댄 일본말) 요소가 가미됐습니다. 수다떨기 좋아하는 주부들이 남들과 다른 오타쿠를 찾다가 한국 드라마를 선택했고 그 중에 겨울연가 오타쿠가 된 것이죠. 이들이 동네 주부들과 마주 앉아 수다를 떨면서 겨울연가 이야기를 하고 또 그 이야기를 들은 주부들이 DVD를 사고 책을 보고 NHK에 재방 요청을 하는 등 구전으로 인기가 높아진 요소도 상당하다고 봅니다.”

-지금 저성장 일본 경제와 관련지어 볼수 있을까요.

“이런 분석도 가능합니다. 일본이 고도성장을 했던 70, 80년대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즉석식품’(패스트푸드)이란 식문화가 형성됐고 영화계에서도 전투와 활극처럼 템포가 빠른 ‘패스트 시네마’가 인기였죠. 지금은 저성장에 불황이 지속돼 오히려 웰빙 형태의‘슬로 푸드’ 쪽으로 식문화가 바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드라마나 영화 역시 ‘슬로 시네마’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겨울연가로 촉발한 한류 열풍도 이같은 사회환경의 변화와 맞물려 나타난 문화현상이라고도 합니다. 고도성장 시대를 달려온 50대 여성들은 슬로 템포로 진행하는 겨울연가를 보고 몸속에 숨어 있던 ‘정의 문화’를 표출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겨울연가에는 소위 일본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섹스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그런데도 인기를 얻었다면 무언가 다른 점이 있나요.

“무엇보다도 등장 인물의 표정과 마음씨가 아름답지 않습니까.일본에서 겨울연가 팬들은 순애(殉愛), 첫사랑을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 순수한 마음 등 오늘날에는 사라진 것들을 동경한다고 합니다. 같은 연령대의 남성들이 드라마를 보지 않고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데 대해서는, 그런 일본 남성들의 순수하지 못한 면이 싫기 때문에,‘욘사마’가 더 멋지게 보인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겨울연가는 영상과 음악이 아름답습니다.배경으로 등장하는 야외와 실내 광경 어느 것 하나 수려하지 않은 것이 없지요. 등장 인물들의 스타일과 패션도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계속해서 바뀌는 코트와 머플러에 관심을 쏟는 팬들도 있습니다.”

-배용준의 인기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일본에서 인기 있는 잘생긴 외국 배우를 꼽으라면 상당수가 톰 크루즈를 말합니다.그런데 톰 크루즈는 첫 눈에 외국인라는 인상을 지울수 없지요. 반면 욘사마는 일본인과 다를 게 없는 동양인입니다. 그가 일본을 찾아 인사말을 일본어로 하고 살며시 웃음을 지으면 팬들은 바로 옆집에 있는 이웃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그런 점에선 톰 크루즈와 다른 연령대와 깊이 있는 팬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잘생긴데다 성실한 느낌도 줍니다.여기에 귀엽고 우수에 깃든 표정이 동정마저 자아내 골수 팬을 만드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용준이 결혼을 했건 애인이 있건 이런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거꾸로 그의 얼굴 스타일은 남성적인 매력이 많지 않아 일본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젊은이들은 원빈이나 이병헌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

- 겨울연가 인기는 얼마나 갈까요.

“적어도 내년 말까지는 문제 없을 겁니다. NHK에서 내년 상반기 무삭제판 한국어 자막판을 방송하기로 했기 때문에 내년에도 겨울연가 열풍은 지속될 겁니다. 내년 말부터는 인기가 조금 시들겠지요. 하지만 한국 드라마 붐은 계속될 겁니다.겨울연가 같은 폭발적인 인기는 없어도 한류는 잠들지 않을 겁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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