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달구는 뮤지컬 세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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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대형 뮤지컬 세 편이 한여름밤을 달구고 있다.

'렌트'(8월 6일까지 예술의전당), '드라큘라'(30일까지 국립극장), '도솔가'(22일까지 LG아트센터)가 그것.대진대 김광선(연극영화과)교수가 세 작품을 통해 한국 뮤지컬의 현황과 과제를 짚어봤다.

뮤지컬에서 가장 중시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 그것은 노래.줄거리.춤과 같은 개별 요소가 아니다.

핵심은 극과 음악의 상호작용이다. 그렇기에 뮤지컬은 고유의 전문성을 요구한다.

음악적 텍스트를 읽어낼 줄 아는 연출가,가창만으로 극적 캐릭터를 드러낼 줄 아는 배우, 음악만으로 극적 구조를 구축해 내는 작곡가, 음악적 멜로디와 언어적 멜로디를 일치시키며 가사를 짓는 작가.

뮤지컬은 바로 이들의 공조를 확보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세 작품의 무대는 아쉬운 점을 남긴다.

'렌트' 의 신선함은 뮤지컬, 특히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이 표현하는 아름다운 허상의 세계를 재생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치장을 거부하는 차가운 무대에선 풍요로운 미국 자본주의 사회의 뒤안에서 그늘진 삶을 사는 이들의 삶이 펼쳐진다.

국내 제작진은 브로드웨이의 변방, 작은 극장에서 출발한 이 작품을 대형무대로 옮겨놓음으로써 무대적 보완이 필요해졌다.

그런 까닭에 원작의 감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앙상하고 헐벗은 원작의 무대가 한국에선 좀 더 풍요하게 채워졌다. 대형무대의 상업성을 배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렌트' 는 방황하는 젊은 예술가들을 표현한 내용과 어울릴 수 있는 음악으로 당연히 저항과 자유의 상징인 록을 주로 선택했다.

그러나 쉼없이 강렬한 비트를 쏟아내는 1막에서 배우들은 예외 없이 시종일관 무리한 힘을 주는 발성을 했고, 다양한 음색을 통한 서로 다른 캐릭터의 구축에는 힘겨운 인상이었다.

그런 까닭 등으로 다른 두 작품과 비슷하게 대사전달에 문제점이 노출됐다.

세기말의 뉴욕을 배경으로 한 '렌트' 가 철저히 미국적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면, 체코 뮤지컬 '드라큘라' 는 유럽의 문화적 토대를 근간에 깔고 있는 작품이다.

동유럽의 전설적 인물 드라큘라를 소재로 유럽 예술사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신이 내린 최대의 저주인 영원한 삶)를 극적 뼈대로 삼고 있다.

이 작품은 스펙터클과 감미로운 서정성의 결합, 즉 뮤지컬에서는 실패하기 어려운 특효비법을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고전적 팝이 주가 되는 이 극에서는 서로 다른 음색과 음량을 지닌 배우들이 좀 더 긴 호흡으로 캐릭터에 접근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다.

그러나 이 공연은 내용전달에 대한 끊임없는 걱정 때문인지, 무대를 설명하는 자막을 계속 내보내 관객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동시에 전체 리듬도 깨뜨리는 오류를 범했다.

'렌트' '드라큘라' 가 음악.내용에 있어서 철저하게 외국의 문화적 기반과 토양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윤택의 창작품 '도솔가' 에 거는 기대는 더욱 커진다.

우리의 공연양식을 개발하려는 그의 지속적인 노력은 매우 소중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도솔가' 는 우선 낯설 만큼 파격적이다. 뮤지컬에 대한 상식을 깨트리기 때문이다.

일단 음악에서 '전통과 테크노가 만나는 크로스오버 뮤지컬' 이라는 설명이 말해주듯, 뮤지컬에서 대부분 지켜지는 스타일의 통일성 대신 장르간 혼합을 꾀했다.

이런 특성은 내용에서도 이어진다. 이 작품의 뼈대는 니체의 철학적 문학서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의 줄거리 구조를 그대로 따른다고 한다.

회귀와 반복을 특징으로 하면서 통일적인 줄거리 구조를 갖지 않은 철학서를 뮤지컬의 극구조로 가져온다는 발상은 더욱 낯설다.

음악극은 정극과 비교해 대사의 양이 평균 5분의 1 정도로 짧아 명확하고 탄탄한 구조를 갖추지 못할 경우 작품의 전달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원칙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작품의 파격성은 뮤지컬의 고유한 미학과 원칙을 희생시킴으로써 난이함과 혼란스러움으로 흘러간다.

1990년대 이후 우리 뮤지컬을 양적으로 크게 팽창했다. 그리고 관객의 눈도 많이 높아졌다.

이제 우리의 뮤지컬 외형적 성장에 걸맞게 뮤지컬 고유의 전문성을 확보해야 할 시기가 됐다.

그 전문성이 자연스럽게 엮어져 일반 관객과 쉽게 조우할 수 있을 때, 그날의 한국 뮤지컬은 오늘보다 한 단계 더 성숙한 모습이 될 것이다.

김광선 대진대 연극영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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