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上. 날로 교묘해지는 작전유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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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주식시장을 망가뜨리는 주범인 '증시작전' 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이벤트팀' 이 구성돼 코스닥시장 등록 전부터 개입하는 이른바 풀코스 작전이 기승을 부리는가 하면, 작전 냄새를 지우고 당국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외국인 자금으로 가장하는 경우도 있다.

주식을 먼저 매집한 뒤 대주주를 위협해 작전에 끌어들이는가 하면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 작전도 다반사다.

시세조종과 관련해 현재 검찰에 접수된 투서만 1백건을 넘고, 금융감독원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도 1백건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꾼' 들은 "소나기만 피해가면 그만" 이라는 식이다.

◇ 풀코스 작전〓정보통신업체 W사장은 이달 초 자칭 코스닥 전문가의 방문을 받았다.

W사장은 "액면가의 10배 이상으로 공모한 뒤 한달 안에 세배 이상 띄워주겠다" 는 제의를 받았다. 말로만 듣던 작전꾼이었다.

W사장이 이들의 정체를 은밀히 추적해본 결과 전주.증권사직원.펀드매니저.회계사까지 모두 망라된 소위 '작전 이벤트팀' 일원막?드러났다.

올 상반기 코스닥 시장에 등록된 A사의 K사장 역시 지난해 중반 한 전직 증권사 직원으로부터 같은 내용의 제의를 받았다.

두 경우의 공통점은 창업 단계의 재무제표 작성→코스닥 등록→주가 띄우기→주식 처분의 전 단계를 작전세력이 책임진다는 것.

이들은 이같은 작전의 수수료로 현금 대신 주식(대략 발행주식의 10% 안팎)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전팀들은 우선 공모가를 부풀리고 등록 후엔 상한가 주문으로 가격을 띄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 C씨는 "펀드매니저들은 회사 펀드나 차명계좌로 주식을 매집해놓은 뒤 공모단계의 수요예측 때 일부러 높은 가격을 제시한다.

등록 직후엔 팔 사람이 없지만 그래도 상한가 사자주문을 2만~3만주씩 낸다" 고 말한다. 바로 허수(虛數)주문을 통한 주가 끌어올리기인 셈이다.

일부 창업투자회사도 이때 끼어든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등록 전에 창투사 보유주식 일부를 펀드매니저에게 헐값으로 넘겨주며 주가 끌어올리기를 부탁하고, 주가가 급등한 뒤 곧 보유주식을 처분한다" 고 전했다.

◇ 검은 머리 외국인〓외국계 자금도 작전세력으로 등장했다. 시장을 현혹하기 위해서다. 작전 자금을 외국에서 '세탁' 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케이먼 아일랜드나 바하마군도 등 조세피난지역의 유령 펀드회사에 자금을 유치한 뒤 다시 국내로 들여와 작전에 투입한다. 외국인으로 분장했다는 점에서 '검은 머리 외국인' 으로 불린다.

코스닥시장 감리관계자는 "투자자들은 외국계 자금이 매집하는 것으로 착각해 매수에 가담하게 된다" 며 "현재 검은 머리 외국인의 작전혐의가 있는 종목들을 조사 중" 이라고 밝혔다.

홍콩이나 말레이시아 등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서로 주식을 사고팔며 주가를 떠받치는 경우도 있다.

코스닥시장 관계자는 "외국계 펀드들이 장외거래로 헐값에 넘긴 주식을 며칠 만에 다시 시장에서 비싼 가격으로 사들이는 등 시세조종 의도가 보이는 경우를 집중 관찰하고 있다" 고 말했다.

◇ 사이버 작전〓사이버 거래가 늘면서 꾼들의 무대도 사이버 공간으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데이트레이딩(컴퓨터를 통한 초단타 매매)을 하는 몇몇 계좌가 특정 종목 3~4개를 계속 주고받는 일이 증시 관계자들에게 발견됐다.

이들이 서로 상한가 매수주문을 내면서 주가는 순식간에 급등했다. 데이트레이딩은 매매계약만 체결되면 장중에 또다른 계약을 할 수 있어 자금동원 부담이 적다.

매수주문을 얼마든지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인터넷 증권정보 사이트에 "외자유치가 곧 성사된다" "유상증자가 임박했다" "신제품 개발이 성공했다" 등 온갖 호재성 풍문을 올린다. 개미투자자들을 유혹하기 위해서다.

코스닥시장 관계자는 "속도가 생명인 사이버 공간답게 사이버 작전은 통상 열흘에서 보름 정도면 끝난다" 고 말했다.

◇ 회유와 협박〓벤처기업 이사 L씨는 지난 봄 한 작전팀으로부터 "한달 안에 주가를 두배 이상 올려줄테니 보유지분 중 10%만 넘겨라" 는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그러자 이들은 "보유 중인 당신네 지분 10%를 시장에 내다 팔겠다" 고 통보해왔고 한동안 주가는 하한가를 이어갔다.

또다른 코스닥 업체 K사장은 이달 초 "호재를 발표하지 않으면 주식을 내다팔아 주가를 떨어뜨리겠다" 는 공갈을 받았다.

유상증자를 앞두고 있어 주가를 관리해야 할 상황이었던 K사장은 결국 신규사업에 진출한다는 억지 발표를 했고, 작전세력의 일부로 말려들고 말았다.

공동취재〓기획취재팀(고현곤.이상렬 기자).경제부(송상훈.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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