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커버스토리] "철학 없는 벤처는 가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철학 없는 벤처는 꺼져라."

일본 벤처 기업가의 대부격인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68)교세라 명예회장이 중앙공론(中央公論)최신호의 기고문에서 '돈독' 오른 후배 벤처 기업가들에게 대갈일성을 했다.

아무런 철학도 없이 쉽게 돈 벌 생각만 하고 있다고 날카롭게 꾸짖은 것이다.

다음은 기고문의 주요 내용.

"벤처기업은 모험심 만으로는 안된다. 세심한 주의력과 겸허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경영자로서 균형잡힌 '전인격' 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는 벤처 기업가의 자질인 동시에 책임이다.

나는 교세라를 세울 때 무일푼이었다. 주위의 도움으로 3백만엔을 마련해 겨우 회사를 세워 지금의 대기업으로 키웠다. 그동안 자금난을 겪으면서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무서운지 체득했다. 돈이란 어렵게 벌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젊은 벤처 기업가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돈을 쉽게 조달하면 제대로 된 벤처를 할 수 없다. 어렵게 개발한 기술과 사업이 흥하듯 어렵게 모은 돈이 결국 사업발전의 토대가 된다. 자금을 손쉽게 조달하면 모든 것이 쉬워 보인다. 이것이 현재 벤처기업이 흔들리는 큰 요인이다.

넷버블이란 것도 여기서 연유한다. 단기간에, 그것도 적자기업까지 상장이 되고 있다.

거금을 쉽게 벌면 그전까지 벤처 기업가로서의 금욕적인 자세가 흩어지고 만다. 벤처기업의 주식을 산 사람은 경마장에서 마권을 산 사람과 같다.

열심히 달려야 할 경주마가 트랙에 들어서는 순간 흐느적거려서는 안된다. 사업은 돈벌이나 공명심으로만 되는 게 아니다. 창조적인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해 고객을 만족시키고 기업을 발전시키면 그것이 사회에 공헌하는 길이다. 이런 기본을 잊어서는 안된다.

내가 벤처 기업가를 육성하기 위해 세운 세이와주쿠(盛和塾)는 여러 명의 젊은 경영자를 배출했다.

그 가운데 소프트뱅크의 손정의(孫正義)사장과 히카리통신의 시게다 야스미쓰(重田康光)사장은 빠짐없이 나와 앞자리에서 열심히 메모하며 내 얘기를 들었다.

지금은 바빠서 자주 만날 수 없는 孫사장과 어쩌다 외국공항에서 마주치면 "孫군, 신중히 하게" 라고 말하는 게 버릇이 됐다.

본인이 정작 내 말을 귀담아 듣는지 걱정이다. 성공을 꿈꾸는 젊은 후배들에게 이 한마디를 꼭 해주고 싶다.

"경영자로서 전인격을 닦고 추구하라. 자기를 규율하라. "

도쿄〓남윤호 특파원

<이나모리 가즈오는…>

일본 벤처기업의 선구자다. 1959년 28명의 동료를 모아 자본금 3백만엔으로 설립한 교토세라믹을 40년 만에 8천억엔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일류기업 교세라로 키워냈다.

승적을 지닌 임제종의 수도승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97년 위암수술을 받은 뒤 삭발하고 교토(京都)의 엔후쿠지(円福寺)로 들어가 불도를 닦았다.

씨없는 수박을 만든 고(故)우장춘 박사의 넷째 사위이기도 하다. 엄격한 금욕주의적 이미지와 달리 가라오케를 즐긴다. 32년 규슈(九州) 가고시마(鹿兒島) 출생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