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전과자’ 만드는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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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을 운영하던 B씨(49)는 지난 4월 벌금형으로 약식 기소되자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학원 버스 기사가 음주운전을 한 것에 대해 도로교통법의 ‘양벌(兩罰)규정’이 적용된 데 따른 것이었다. 도로교통법이 정부 방침대로 개정됐다면 B씨가 법정에 서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2007년 이후 양벌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잇따라 내리고 있지만, 국회는 개정 작업에 속도를 내지 않고 있다. 여야가 “양벌규정을 일괄 정비하겠다”고 다짐하고도 정쟁에 매몰돼 민생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28일 국회와 법무부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해 7월 양벌규정 정비를 골자로 하는 ‘행정형벌 합리화 방안’을 마련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당시 법무부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취지에 따라 법인이나 영업주가 관리·감독 의무를 다한 경우엔 처벌을 면제할 것”이라 고 밝혔다.

그러자 여야는 지난해 11월 원내대표 간 합의로 양벌규정이 들어간 361개 법률의 개정안을 규제개혁특위 소속 의원들의 명의로 공동 발의했다. 정부도 관련 개정 법안 20여 개를 제출했다. 같은 해 12월 초 특위는 1차로 73건의 개정을 의결한 뒤 “나머지 법안도 순차적으로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년 후인 지금도 절반가량인 180여 개 법안이 처리되지 않은 채 각 상임위에 계류돼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지난해 말과 올 상반기 여야가 ‘국회 폭력’ 등으로 대치하면서 특위 활동이 사실상 중단되고 각 상임위별로 ‘거북이 처리’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이달 초 13개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4대 강 예산’을 둘러싼 여야 대립으로 또다시 올스톱됐다. 기업 등이 벌금형을 선고 받으면 정부 입찰 제한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양벌규정이 모두 정비되면 6300여 명의 법인과 자영업자가 처벌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말했다.

권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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