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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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는 요모조모 돋보이는 구석이 많다.

우선 돈이 '엄청나게' 조금 들었다. 16㎜, 그것도 남이 쓰다 남은 자투리 필름으로 제작했으니까. 총 1억2천5백만원. 그러나 제작비를 알기 전엔 표가 잘 안 난다. 그러니 충무로 영화인들은 긴장할 만하다. 그 열 배 스무 배를 들이고도 관객들의 반응이 시원찮은 작품이 많으니 말이다.

감독도 별나다. 고졸 학력에 공사장 잡부, 호텔 청소원 등 경험으로 무장했을 뿐 정식 영화 공부는 안 했다. 혼자서 2천 편이 넘는 영화를 본 게 전부다. 잠깐 영화사 연출부에서 일한 적은 있다. 그러나 장편 데뷔작인 '죽거나…' 에서 1인5역을 했다. 기획.각본.연출.주연.무술감독. 다들 놀랍다는 반응이다.

독립영화는 대부분 감독의 자기 표현을 중시한다. 비서술적이고 상업성도 희미하다. 해서 재미와는 담을 쌓기 일쑤다. 이 영화는 4개의 단편영화로 구성됐다. 하지만 전형적인 독립영화와는 거리가 있다.

감상하다 보면 오히려 '넘버3' '주유소 습격사건' 같은 상업영화가 연상되니까. ' 열등감에 찌든 공고생 석환.성빈의 치기 어린 싸움을 그린 '패싸움' . 감옥에 갔다 온 성빈이 자신이 죽인 악령과 대결하는 '악몽' . 경찰이 된 석환이 폭력배 보스와 한판을 벌이는 '현대인' . 석환의 동생이 성빈을 따라 폭력배가 돼 벌이는 조직간 혈전을 그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가 그 단편들. 각각이 액션.호러.다큐멘터리.갱스터를 넘나든다.

이들은 독립적이지만 연결이 설득력 있고 꼼꼼하다. 해서 단편과 장편을 동시에 감상하는 즐거움을 준다.

곳곳에 매설된 코믹한 장치, 슬로모션과 스피드를 적절히 결합한 액션은 영화의 양념들. 여배우가 거의 나오지 않는 데다 욕이 대사의 절반을 넘는 것도 이 영화가 가진 각별한 구석이다.

실제 욕설을 뱉는 장면은 워낙 사실적이어서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그 수많은 욕설 중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는 말. "x새끼들아, 세상을 졸로 보지마. " 이는 돌파구 없는 세상을 향해 그들이 던지는 공통된 하소연이다.

맨주먹 하나로 아등바등 해보지만 슬픔만 토해내고 꺼꾸러지는 젊은 군상들. 이 영화는 그들을 위한 송가다.

15일 개봉.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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