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인생을 사는 법’ 전도사 김홍신 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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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를 치른 수험생 중 일부는 이맘때면 시련과 좌절에 빠진다. 특목고 시험에 떨어져서, 대입시험 성적이 저조해서, 원하는 대학에 낙방해서…. ‘그들에게 희망을 찾아가는 이정표를 알려줄 순 없을까’ 라는 고민을 안고 김홍신(62) 작가를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만났다. 최근 에세이집 『인생사용설명서』를 쓴 그는 강연을 통해 ‘맛있는 인생을 사는 법’을 알리는 전도사로도 활동 중이다.

“대입 낙방 안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

“내 대학 입시 전적이 4전3패에요. 대학에 떨어지고 고향 가는 길에 죽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김 작가는 학창시절을 회상했다. 당시엔 대입시험 점수를 전·후기로 대학을 지원하던 시절이었다. 그도 의과 대학 진학을 기대하던 부모의 바람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다. “낙방한 아들을 환히 반기는 어머니 얼굴을 보곤 결국 죽지 못하고 핑계를 댔죠. ‘안타깝게 합격선에 걸렸다’고. 시골 촌놈이 공부를 하면 얼마나 했겠어요. 실은 점수가 합격선에서 한참 멀었겠죠.” 오늘날 소설가·국회의원·교수로 변신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한 그지만, 당시엔 입시의 고통으로 힘겹게 보냈다.

재수를 한 그는 학과 선택을 두고 고민에 빠졌고, 결국 국문과를 택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겐 의사가 되겠단 마음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대신 좋아하는 독서와 글쓰기를 택한 거죠. 재수할 때도 공부는 뒷전이고, 소설과 시를 읽고 쓰는 데 몰두했거든요. 대학 입학 전에 자작 소설을 7편이나 썼을 정도니.” 이 작품들이 대학 공모전에 당선돼 그는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고교 작문수업 때내 글을 보신 선생님이 어깨를 쓰다듬어주셨을 때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해요. 수업 때 내 글을 발표하고 교내 백일장에서 장원도 차지했던 기억에 용기를 얻었죠.” 그가 국문학을 택한 배경이다. “학생들이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재능을 진로로 택했으면 해요. 그게 맛있는 인생을 사는 첫걸음이거든요.”

“맞으면 역풍 돌아서면 순풍, 실패는 면역주사”

그는 성공 기준을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했다. “각 나라마다 정치 지도자들이 있지만, 세상은 자기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바꾸죠. 대학을 중퇴한 ‘IT 황제’ 빌 게이츠를 생각해 보세요. 열등감 때문에 주눅 들고 화내는 겁니다. 생각만 바꾸면 돼요. 단지 차이일 뿐이라고.” 그는 우리나라 발해사(渤海史) 분야의 일인자가 된 서울대 송기호 교수의 얘기를 들려줬다. 학생 때 대입 전국 수석을 차지했던 송 교수가 비인기학과인 ‘역사학과에 가겠다’고 인터뷰해 주변에 충격을 줬다는 일화다. ‘내가 가난하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았다면 『성냥팔이 소녀』『미운 오리새끼』 동화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세계적인 작가 안데르센의 회고도 전했다.

그는 시련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마음가짐을 당부했다. “내 앞의 두 명이 등록을 안 해 예비후보로 대학에 갔어요. 최초 합격자 발표와 후보자 통보 사이에 기간 차가 있었는데 이를 못 참고 자살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순탄치 않았던 대학 재학시절도 떠올렸다. “집이 가난해 휴학해야 했어요. 그래서 머릴 짜낸 게 신춘문예에서 상금을 타는 거였죠.” 그는 계엄상황에서 당시 사회비리를 고발한 『인간시장』을 출판하면서 고초를 겪었다. 검열단에 끌려가 협박을 받고, 가족들이 살해 위협 전화·편지로 고통을 받기도 했다. “고(故) 성철스님이 ‘대나무처럼 살라’는 말씀을 보내왔어요. 대나무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는 속이 비고 마디가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욕심이 없으니 뺏길 걸 걱정하는 두려움과 고통이 없고, 살면서 인생의 여러 고비를 넘긴 경험이 마디처럼 쌓여 지탱해준다는 내용이었죠. 그 때부터 실패를 면역력을 길러주는 예방주사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희망과 열정만 있으면 헤쳐 나가는 법 깨달아”

시험점수로 고민하는 수험생들에게 생각의 틀을 바꾸라고 조언했다. “재벌 총수도 돈과 젊음 중 고르라면 젊음을 고를 겁니다. 한번 뿐인 인생, 근사하게 써야하지 않을까요. 열등감에 사로잡혀 낭비할 순 없잖아요. 십여개 교과목만으로 수천 가지 재능을 재단하는 사회 시스템에 매몰되지 말아요. 자기 개성과 특기를 찾는 노력이 더 중요합니다.” 그는 자기 경험에 비춰 “세속적으로 좀 더 나은 대학·학과에 가라고 해서 내 아이도 행복할까 고민했다”며 딸에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누누이 강조했단다. 그의 딸은 지금 구두 디자인을 공부 중이다.

“‘젊은이에겐 실수할 특권까지 있다’는 말이 있어요. 피겨 여왕 김연아도 수만 번 넘어졌을 겁니다. 누구나 실패를 합니다. 단, 희망과 열정만 잃지 않으면 돼요.” 희망과 열정이 있으면 절벽을 오를 방법을 찾게 된다는 설명이다. “밧줄로 만들 알맞은 소재를 찾고, 줄을 꼬는 기술도 익히게 되죠. 오르다 떨어지면 부족한 체력도 기르게 되고. 그게 다 공부고 경험이 되는 거죠. 두렵다고 주저앉으면 안되요. 그럴수록 앞으로 나가야 헤쳐 나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사진설명]김홍신 작가가 자택 서재에서 "실패를 예방주사로 생각하고 시련앞에서 대나무처럼 유연하게 맞서라"며 입시에 실패한 수험생들을 격려하고있다.

< 박정식 기자 tangopark@joongang.co.kr >

< 사진=최명헌 기자 choi315@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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