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족 난민 기구한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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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해 8월 라오스 국경에 인접한 태국 농카이주 강제수용소의 철창 안에 갇혀 있는 몽족의 모습. [농카이 AFP=연합뉴스]

태국 정부가 국제사회와 인권 단체의 반발에도 라오스계 몽족 4000여 명을 라오스로 송환할 것이라고 AFP와 현지 신문인 방콕포스트가 27일 보도했다. 몽족은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공산 정권인 라오스 정부의 탄압을 받고 있는 소수 민족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태국으로 넘어와 난민촌에 거주해왔다.

◆트럭과 버스 100여 대 동원=AFP는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 인권 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를 인용해 태국 정부가 26일 저녁부터 태국 북부 페차분주(州) 난민촌에서 몽족의 라오스 송환을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군대가 주도하는 송환 작전은 28일 본격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며, 이를 위해 난민촌 인근에 100여 대의 트럭과 버스를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나이 파숙 HRW 태국 조사원은 “송환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외부와의 접촉을 막기 위해 전화도 차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티탄 와타나야곤 태국 정부 대변인은 “안전상의 이유로 몽족의 송환 날짜를 공개할 수 없지만, 일부 언론이 송환 장면을 지켜볼 수 있도록 군대가 허용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태국 난민촌에 거주해 온 몽족은 라오스 정권의 탄압을 피해 밀입국했다며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상태다. 국제 인권 단체도 “몽족을 본국으로 보낼 경우 가혹한 처벌과 고문이 우려된다”며 “제3국에 정착할 때까지 태국 거주를 허용하며 송환을 미뤄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태국 정부는 “페차분주 난민촌에 거주하는 몽족은 난민이 아니라 일자리를 찾아 밀입국한 불법 입국자인 만큼 추방할 수밖에 없다”며 “올해 말까지 몽족을 모두 라오스로 돌려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태국 정부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인권 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송환자 선별 과정에서 유엔난민기구(UNHCR)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등 정치적 망명자를 걸러 내는 심사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수나이 조사원은 “밀입국자와 망명자를 구분하는 조사 과정의 투명성이 결여된 데다 국제 기준을 충족했는지도 모호하다”고 주장했다. 태국 여당인 민주당의 부라나즈 스무타락스 대변인은 “다른 나라가 몽족을 받아들이는 데 합의하면 이들을 라오스로 송환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전에서 CIA 용병 활동=몽족은 라오스 북부 산악 지대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으로 1961~75년 베트남전쟁 당시 친미 성향의 라오스 정부를 지지하면서 미 중앙정보국(CIA)의 용병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75년 전쟁이 끝나고 라오스에 공산 정권이 수립된 뒤 이들에 대한 대규모 토벌 작전 등 탄압이 시작되자 30여만 명이 태국 등으로 탈출했다. 태국으로 탈출한 몽족은 미국이 2003년까지 실시한 정착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 등 26개국에 이주해 정착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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