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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서 스타가 나오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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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왜 이럴까. 우선 과거 야권의 거물들처럼 누구나 이름만 대면 확 떠오르는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완고하면서도 해맑은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던 김영삼(YS), 진중함 속에 인간적 면모가 느껴지던 김대중(DJ), ‘사나이’ 느낌 물씬했던 노무현…이렇게 초점이 있는 얼굴의 소유자를 지금의 민주당 지도부에선 찾기 힘들다.

온화한 미소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정세균 대표는 올해 의원직 사퇴서를 던지고 거리의 투사로 변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일그러진 표정으로 ‘투쟁’을 부르짖는 그의 얼굴은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정 대표는 본래 대화와 타협의 현장에서 존재감을 발휘해온 합리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국민의 가슴에 콕 박히는 언변을 갖춘 인물을 찾기 어렵다. 정치인은 ‘사자후’는 아니더라도 듣는 이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명언을 만들어낸 YS, 깊이 숙성된 구상들을 “첫째, 둘째, 셋째” 해가며 쉽게 풀어내 청중을 사로잡은 DJ가 그랬다. 정 대표도 직접 쓴 저서들에선 깊이 있는 사고를 보여줬다. 그러나 그의 연설을 듣고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늘어지는 설명조이기 때문이란 지적이 있다. 진짜 하고싶은 말 대신 당 안팎의 지지 기반 또는 라이벌들을 의식해 가공을 거듭한 말들만 해서란 풀이도 있다. 정 대표에겐 그만의 메시지, 그만의 목소리가 있을 것이다. 국민들이 그에게 듣고 싶은 건 그것이다.

민주당에서 스타급 인물을 찾기 힘든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결정적 순간 자신을 내던질 줄 아는 ‘사즉생(死卽生)’ 정신의 소유자가 눈에 띄지 않는 점이다. 독재정권에 목숨 걸고 맞선 YS와 DJ, 새천년민주당 간판으로 부산에서 출마하는 바보짓을 무릅쓴 노무현에게 국민은 감동했고, 그들은 카리스마를 얻었다. 지금의 민주당에선 지난 10월 수원 재·보선 공천을 사양하고, 무명 후보 당선을 위해 전력투구한 손학규 전 대표가 잠깐 그런 모습을 보여줬을 뿐이다.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정 대표를 비롯해 더 많은 민주당 의원이 야권의 혁신과 통합을 위해 기득권 포기를 무릅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더라도, 민주당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4년 전보다는 좋은 성적을 낼지 모른다. 그러나 반대당(opposition party)에 머무를 뿐 대안정당(alternative party)으로 자리 잡긴 어려울 것이다.

강찬호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