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줬다” 진술뿐이지만 박진 의원 유죄 판결 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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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24일 오후 선고공판이 열리는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 현관 출입문으로 들어서고 있다. 박 의원은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홍승면)는 24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2만 달러를 건네받고, 차명 후원금 1000만원을 송금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 박진 한나라당 의원에게 벌금 300만원과 추징금 2313만원을 선고했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이 선고되면 당선을 무효로 하는 규정에 따라 대법원에서 이 형이 확정되면 박 의원은 의원직을 잃게 된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증거로는 박 전 회장의 진술이 유일하지만 진술 내용이 충분히 신빙성이 있고 구체적”이라며 “박 전 회장이 돈을 건넨 다른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재판에서도 진술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고, 박 전 회장이 박 의원에게 특별히 악감정을 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특히 지난해 3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베트남 국회의장 환영 만찬 때 박 의원이 박 전 회장에게서 2만 달러를 받은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박 의원은 ‘만찬장을 떠날 때 다른 내빈의 배웅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박 전 회장이 돈을 건넬 형편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나 ‘박 의원이 혼자 만찬장을 빠져나갔다’는 당시 사진기사 이모씨의 진술에 더 신빙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박 의원이 만찬장을 떠나기 직전에 찍은 사진에는 박 전 회장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 돈 봉투의 윤곽이 보이는데 박 의원이 떠난 뒤 찍은 사진에선 사라졌다”며 “이 같은 사진 내용은 법정에서 재연한 결과와도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지난 3일 선고 전 마지막 재판에 대역을 불러 박 전 회장의 양복을 입혀놓고 만찬 당시 상황을 재연했었다.

박 의원이 박 전 회장 측에서 1인당 기부한도를 초과한 후원금 1000만원을 송금받은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박 의원은 박 전 회장 측과 사전에 연락한 적이 없어 박 전 회장이 보낸 돈인지 몰랐다고 주장하나 박 전 회장의 측근인 정승영 전 정산개발 사장과 다섯 차례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유죄 판단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다만 “박 의원은 박 전 회장이 건네는 봉투에 100만원 남짓 되는 이른바 ‘거마비’가 들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갑자기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주는 돈을 황급히 거부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며 “외교 분야 전문가로서 더 큰 꿈을 품고 성실히 의정활동을 해 온 점을 참작한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즉각 항소하겠다”며 “정치생명과 명예를 걸고 억울한 누명을 반드시 벗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법원은 지난달 27일 박 의원처럼 박 전 회장의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서갑원 민주당 의원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같은 당 이광재 의원에게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김원기·박관용 전 국회의장, 최철국 민주당 의원 등에게도 모두 유죄가 선고됐다. 이들 사건 모두 박 전 회장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였다. 이에 따라 인사청탁과 함께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재판에서 법원이 어떤 판단을 취할지 주목된다. 한 전 총리 사건도 돈을 건넸다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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