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6·25때 동부전선 지킨 하브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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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아직도 눈을 감으면 강원도 산골의 치열한 전투장면이 떠오릅니다."

한국전쟁 50주년을 앞둔 20일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 있는 한국촌. 한국전에 참전했던 하브타(70)씨는 소중히 간직해 온 색바랜 군복을 꺼내 입었다.

1951년 황실근위대 소속이었던 21세의 하브타는 한국전쟁에서 싸울 자원병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참전을 결심했다.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나라였지만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운다는 유엔정신은 그의 젊은 혈기를 자극했다.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에 6천여명의 자원병을 보냈다. 하브타도 다른 병사들처럼 군함을 타고 26일동안의 험난한 항해끝에 부산항에 도착했다.

에디오피아군은 주로 동부전선에 투입돼 남하하는 중국군과 치열한 전투를 펼쳤다.

1백20명이 사망하고 5백36명이 부상당할 정도로 격전을 벌였지만 모두가 소신을 가지고 뛰어든 전쟁이었기에 포로가 되거나 투항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하브타는 동부전선 전투에서 4명의 소중한 전우를 잃고 자신도 파편을 맞아 온몸에 부상을 입었지만 끝까지 전선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1년 반의 전쟁 끝에 귀국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극심한 가난 뿐이었다.

경제사정이 좋지 않던 에티오피아 정부가 남의 나라 전쟁에서 싸운 이들까지 챙겨줄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1971년 에티오피아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하브타의 고통은 커져만 갔다.

북한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던 에티오피아는 한국전 참전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하브타도 간신히 얻었던 경비일을 잃고 실업자 신세가 됐다.

91년 공산정권이 붕괴하자 하브타는 17년만에 복권됐다. 그러나 핍박받으며 생긴 가난과 설움의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특히 공산주의 교육을 받은 9명의 자녀들과의 이념적 갈등은 아직도 하브타를 괴롭히고 있다.

지금까지 생존해있는 2천여명의 참전용사들 대부분이 하브타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흘린 피가 남북통일의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고 강조했다. 참전용사들의 이런 딱한 사정을 접하고 한국의 민간단체들이 4년전부터 후원에 나섰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지난 96년 참전자 가족을 위한 후원회를 결성한 신광철(申光澈.48)씨는 "반세기에 걸친 남북 대립으로 이들이 겪어야만 했던 피해를 조금이나마 보상하고 싶다" 고 말했다.

후원회는 내년 4월까지 참전기념관과 의료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

02-363-0028

아디스 아바바〓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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