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들 불안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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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3일 오후부터 응급실에서 철수하겠다는 전국 의대 교수 대표자회의의 방침이 알려진 22일 밤 대학병원에 있던 응급환자들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있던 환자들은 "정말 교수들마저 철수하느냐"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고 반응했다.

저혈압 증세로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져 오후 7시쯤 응급실을 찾은 金모(88.여)씨 가족은 "숨도 제대로 못쉬는 환자더러 나가 죽으란 말이냐" 고 말했다.

협심증 등으로 대소변을 받아내야 할 정도인 鄭모(75)씨는 "충남 서천에서 올라왔는데 입원을 받아주지 않아 닷새째 응급실에 머무르고 있다" 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한 처사" 라며 의대 교수들의 결정을 원망했다.

응급실에 있던 한 교수는 "철수 방침을 전해듣긴 했지만 응급실에 의사가 한명도 없는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을 것" 이라며 마지막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한편 집단폐업 사흘째인 이날 대형 병원 응급실과 보건소는 몰려드는 환자들로 크게 붐볐다.

특히 폐업을 앞두고 의사들의 요구로 강제퇴원했던 환자들이 상태가 악화돼 다시 응급실을 찾는 U턴 현상까지 벌어지면서 비상 응급진료체계의 한계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응급실 의사들은 밀려드는 환자들로 탈진 일보 직전이었고 서울 종로5가 일대 대형 약국에서는 시민들의 약 사재기로 의약품 품귀현상이 나타났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은 유방암 환자 李모(53.여)씨는 지난 4월부터 이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으나 지난 20일 병원측의 요구로 강제퇴원했다.

李씨는 고통을 참지 못해 다시 응급실을 찾았고 "상태가 악화됐다" 는 진단결과를 받아야 했다.

응급실 관계자는 "응급실 환자의 절반 가량이 입원했다 최근 강제 퇴원한 환자들" 이라고 말했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과 이대 목동병원.여의도 성모병원.보라매 병원 등에는 평소의 2~3배 이상의 환자들이 몰려 일부는 병상이 아닌 바닥에 누워 있었다.

비상진료를 하고 있는 의대 교수들은 정상진료가 어려울 정도로 지쳐 있었다. 12시간씩 2교대로 근무하는 한양대병원 李모(54)교수는 "응급환자의 경우 신속.정확한 판단이 요구되는데 피로가 쌓여 혹시라도 일을 제대로 못할까 걱정" 이라고 털어놨다.

박신홍.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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