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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슨 추모 열기 뜨거운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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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 94세의 일기로 사망한 뒤 학계의 추모 열기가 뜨겁다. 예전의 새뮤얼슨처럼 요즘 경제학 교과서의 인기 저자인 하버드대 그레고리 맨큐(경제학) 교수는 지난주 블로그에 ‘폴과의 추억’이라는 글을 올렸다. “우리 세대의 대다수 학생처럼 학부 시절 프린스턴대에서 들은 첫 경제원론 교재가 새뮤얼슨 교과서였다. 내가 경제학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상당 부분 그 책 덕분이었다.”

학자가 된 맨큐는 보스턴연방준비은행의 자문위원 모임에서 종종 새뮤얼슨을 만나기도 했다. 맨큐는 우연히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1948년에 나온 새뮤얼슨의 교과서 초판을 운 좋게 35달러에 구할 수 있었다. 그는 “난 그 몇 배라도 흔쾌히 지불할 의사가 있었다”며 “이거야말로 소비자 잉여(consumer surplus·소비자가 구매에서 얻는 이익에서 제품 가격을 뺀 부분) 아니냐”고 즐거워했다. 맨큐는 그다음 열린 보스턴 연준 모임에 그 책을 가지고 가서 저자의 친필 사인을 받았고, 이를 소중하게 보관 중이다.

골수 케인지언이자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경제학·국제관계) 교수가 추모 대열에 빠질 리 없다. 그도 블로그에 ‘최고의 경제학자(The incomparable economist)’라는 글을 올려 고인을 상찬했다. 그는 새뮤얼슨을 많은 것을 두루, 게다가 깊이 아는 학자로 평했다. 그는 “다른 어떤 경제학자도 그만큼 후학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고 썼다.

외신이 쏟아내는 부고 기사를 읽으면서 새뮤얼슨이 현실과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던 흔치 않은 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시사 칼럼을 썼고, 존 F 케네디 대통령 등 최고위 인사에게 조언을 하는 등 현실 참여에 적극적이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쓰고 싶은 글을 맘껏 쓰기 위해 한사코 공직을 직접 맡지는 않았다.

물론 경제학자가 다 새뮤얼슨 같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국내의 한 명문대학 경제학 교수에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에 대한 시각을 물은 적이 있었다. 대답이 의외였다. “난 이론경제학을 하는 사람이어서 경제 현실은 잘 모른다.” 그가 지나치게 겸손한 것인지, 아니면 현실 따로 이론 따로의 경제학을 하고 있는 건지….

말년의 새뮤얼슨은 의학 학술지를 읽어가며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을 먹고 저지방 우유를 섭취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경험적인 현실세계를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싶어했던 그의 열정이 학문의 성취뿐만 아니라 장수의 비결이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송년회가 몰리는 요즘, 건강을 열심히 챙겼던 그를 다시 떠올리는 또 다른 이유다.

서경호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