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무대가 연기력 인정한 ‘키스의 여왕’ 방진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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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황정민과 키스를 한다. 다음날은 박건형과 입맞춤을 한다. 그 다음날은 또 황정민…. 이렇게 운 좋은 여인이 누구일까.

물론 현실은 아니다. 무대에서다. 뮤지컬 ‘웨딩 싱어’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 방진의(29·사진)씨는 국내 최고의 남자 배우들과 번갈아 키스신을 연출해 뭇 여성들의 시샘을 받고 있다. 사실 무대에서 키스하는 게 뭐 대수랴. 하지만 ‘웨딩 싱어’의 키스신은 유난히도 부드럽고 달콤하며 로맨틱하다. 관객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저도 주변에서 ‘어때? 좋아?’라는 질문 너무 많이 받아요. 그럴때마다 뭐라고 답해야 하나 당황스럽지만, ‘키스신’ 역시 그저 연기의 한 부분이에요.”

배우 방진의를 ‘키스의 여왕’ 정도로만 안다면 오산이다. 그는 10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뉴욕 뮤지컬 페스티벌(NYMF)’에서 최우수 연기자상을 받은 실력파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뉴욕뮤지컬페스티벌은 전세계에서 실험성 높은 뮤지컬들이 대거 출품해, 향후 발전 가능성을 타진하는 무대다. 올해는 모두 28개의 신작이 선을 보였다. 한국에선 영화 ‘달콤살벌한 여인’을 무대화한 소극장 창작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이 참가했고, 여기서 주인공 미나역을 깔끔하게 소화한 그가 상을 받은 것이다.

“정작 저는 현장에 없었어요. ‘웨딩 싱어’ 연습 때문에 서둘러 귀국해야 했거든요. 데뷔 9년 만에 처음 상을 받게됐다는 사실을 ‘문자메시지’로 전달받는 기분, 얼떨떨하던데요.”

배우 방진의에 대해 전문가들은 “뮤지컬 배우가 탤런트·가수와 어떻게 다른지 확실히 보여주는 배우”라고들 평한다. 그는 우선 대사 전달력이 뛰어나다. 자기 감정에 취해 노랫말을 얼버무려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주는 많은 배우와 달리, 그의 노래는 귀에 쏙쏙 들어온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씨는 “군더더기 없이 깨끗하다”라고 말한다. 어떤 캐릭터를 소화해도 배우 방진의가 아닌, 그 배역으로 보이는 것도 강점이다. 덕분에 최근 ‘헤어 스프레이’ ‘컴퍼니’ ‘지붕위의 바이올린’ 등에서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들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이지나 연출가는 “독특하면서도 안정적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나왔다. 아버지 사업이 실패해 대학때는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에서 치즈케이크를 팔았고, 라면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2002년 김민기씨가 연출한 ‘지하철 1호선’에 출연하면서 “자신을 비워내는 것, 기본에 충실할 것”을 알아가며 뮤지컬 연기에 눈을 뜨기 시작했단다.

글=최민우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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