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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민족협력의 시대 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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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발표한 6.15 공동선언은 21세기 한반도의 통일 및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새로운 기본틀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이 2박3일간의 평양회담을 통해 이룩한 이 선언은 박정희(朴正熙)대통령-김일성(金日成)주석간에 이뤄졌던 7.4 남북공동선언이 지난 28년간 남북간 협의의 기본정신으로 활용됐듯이 앞으로 남북간의 모든 문제 논의의 전범(典範)이 될 것이다.

평양(平壤)선언은 남북 두 정상이 분단 후 처음으로 만나 상대방을 협상의 실체로 인정하고 그 현실인식의 바탕 위에서 민족의 통일을 모색하고 공동번영을 추구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민족사적으로 큰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양측은 당국간 대화창구를 복원함으로써 교류 및 경제협력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당국간 회담에 앞서 공동선언에서 드러난 몇가지 애매하거나 미흡한 점을 보완하고 해석의 차이를 좁혀 보다 분명하고 실질적인 세부 합의서가 마련돼야 구체적 협력 실천이 가능하다고 본다.

'자주적 해결' 의 의미

평양선언은 크게 보아 ▶통일(1항 및 2항)과 ▶민족의 교류 및 공동번영(3, 4항)이라는 두개의 테마로 이뤄져 있으며 이를 당국간 회담을 통해 실현해 나가도록 규정하고 있다.

두 정상은 통일문제는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이 표현 중 '자주적' 이라는 말은 해석의 차이를 낳을 수 있다.

북쪽은 그동안 '자주' 를 항상 외세 배격, 곧 주한미군 철수를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우리측은 당사자 해결 원칙을 천명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만약 북측이 우리측 해석대로 평화체제 문제 등에 있어 '한국의 어깨너머로' 미국측과 협상하던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자세를 전환한 것이라면 이는 엄청난 변화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기에는 큰 불씨가 감춰져 있다고 해야 할 것이며 앞으로 당국자간 회담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두 정상이 '남측의 연합제안' 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 이 공통점이 있다고 보고 이것을 통일의 방향으로 추진키로 합의했다는 부분도 대단히 주목된다.

박준영(朴晙瑩) 청와대 대변인은 두 정상이 합의한 것은 외교와 국방에 관한 권한을 남북의 지방정부가 갖도록 하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북한측이 주장해온 '느슨한 형태의 연방안' 과 근접한 안이다.

물론 이것은 통일의 중간단계에 관한 것인 만큼 아직 확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측의 '연합' 안과 북측의 '연방' 안이 어떤 차이와 유사점이 있는지 개념 규정을 명백히 해야할 것이다.

새 통일론은 국민의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국회 차원에서도 충분히 검증돼야 할 사안이다.

이번 공동선언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긴장완화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은 크게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대표단은 해설자료를 통해 두 정상이 '상호 침략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상대방을 위협하는 행위를 자제키로' 했으며 金대통령이 金위원장에게 미사일 문제 조기 해결 등 현안의 해결을 촉구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해설자료를 통해 보충적으로 언급될 사항이 아니다.

긴장완화 장치 필요

미사일 등 대량 파괴무기의 개발 중단에 대해 언급해 줄 것을 주장해온 미국이나 일본 등 우방들에는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측이 겉으로는 정상회담의 공동선언 합의에 환영을 표시하면서도 공식논평을 일시적으로 유보하는 등의 태도로 보아 나름대로의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정부측은 주변국들이 우리 정부의 의도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도록 충분한 설명을 해야 하며 당국간 회담에서 긴장완화를 위한 군사위원회 상설화를 촉구해야 할 것이다.

이산가족 및 친척의 상봉이 8.15를 즈음해 이뤄지는 것으로 돼 있어 1회성이 아니냐는 의구심들이 제기되고 있다.

만약 이산가족 문제가 단발로 끝나거나 상봉의 규모를 조금 늘리는 선에서 끝나버리면 이산가족들의 염원은 도저히 충족되지 못할 것이며 자칫하면 전시적 상봉만 하고 경제협력 등 필요한 것은 모두 내준다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번 8.15상봉은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상봉의 첫걸음이 돼야 하고 면회소.우편소 설치 등 후속조치가 이어져야만 북측이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국민적 공감대 바탕돼야

이번 공동선언이 의미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1992년 발효됐으나 북측의 묵살로 사실상 사문화됐던 남북기본합의서를 다시 활용하는 기틀이 마련됐다는 점이다.

그동안 북측은 자주 및 민족대단합 등 이른바 '근본문제' 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이를 외면해 왔으나 두 정상이 통일원칙 등에 합의함으로써 앞으로 기본합의서를 남북관계의 유효한 문서로 재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성과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金국방위원장은 전세계에 TV로 중계된 공식행사를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줬으며 국민도 북측의 새로운 변화의 바람과 개방에 대한 의지에 대해 이해가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부측이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두 정상의 합의 정신을 충실히 반영해 당국간 회담에 임할 것을 촉구하며 그 과정에서 투명성이 유지되도록 국민의 사전 이해를 넓히는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자 한다.

남북 회담은 합의서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남북 협력의 시대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그 시작이 이제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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