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계를 향한 새 평화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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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14일 연쇄 마라톤 단독회담을 갖고 남북문제의 모든 현안에 대해 깊숙한 토론을 해 네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우리는 두 정상이 그동안 속내를 털어놓고 이야기할 기회를 충분하게 가진 만큼 그야말로 '세계를 향한 해답' 을 내놓은 것으로 이해한다.

두 정상의 연쇄회담에서는 남북간의 화해와 통일문제, 긴장완화와 평화정착문제, 이산가족상봉문제, 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교류협력 문제에 의견접근을 봤다.

사실상 남북간의 새로운 합의서가 만들어진 셈이다.

우리측 대표가 전하는 바로는 북한의 金위원장의 자세가 적극적이고 합리적이었으며 두 정상이 허심탄회한 토론을 통해 여러 부문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전하고 있다.

우리는 金위원장의 자세가 문제를 새롭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해결하려는 자세라고 생각하며 그것은 북측이 종래의 명분론적인 입장에서 실리적 입장으로 전환한 것을 의미한다고 보고 싶다.

사실 그동안 베이징(北京) 등에서 가졌던 고위 실무자급의 예비접촉에서 표출된 양측의 입장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특히 회담에 임하는 양측의 기본입장은 크게 달랐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남측이 실질적인 협력의 확대를 통해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이르는 방안을 협의하고자 했다면 북측은 통일과 분단, 자주와 민족 대단합 등 명분론적인 문제들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양측이 지향하는 마지막 목표는 결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분단해소와 통일은 우리 민족에게는 결코 뒤로 미룰 수 없는 지상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흘간 회담이나 한번의 합의문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은 북측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북 양측이 민족의 공동번영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들을 위해 먼저 서로 협력해 나가면서 정치.군사적인 문제는 계속 논의해 나가는 병행적 방안을 취하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방식일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산가족의 상봉문제가 결코 1회성 이벤트에 그쳐서는 안될 것이며 남북경협의 지속적인 확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확실하게 합의돼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바탕 위에서 북측의 심각한 전력난을 해소하고 철도복구 등 필요한 기반시설을 구축하는 지원방안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며 또 전세계의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장치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백가지 선언보다도 구체적인 제도와 기구를 통한 실천적인 보장조치가 중요하다.

남북이 상호실체를 인정하고 연락사무소나 대표부와 같은 당국간의 상시적 채널을 구축함으로써 군사적 충돌이나 긴장요인을 대화로 해소하는 창구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우리가 바라는 통일방식은 일거에 해치우는 '빠른' 통일이 아니라 제도적 장치로 이어지는 점진적 '바른' 통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실질적 합의들이 양측의 공동합의문으로 결실을 보아 한반도 평화 장전(章典)이 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한다면 두 정상이 합의한 평화의지를 전세계에 확인하는 민족적 행사가 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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