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김정일의 김대통령 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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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이미 알려진 대로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 관해 연구를 거듭했다.

그러면 金위원장은 金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연구했을까.

金대통령이 金위원장에 대한 정보부족과 엇갈린 평가 속에서 판단의 어려움을 겪은 데 비해 金위원장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우리측 공개정보 때문에 유리한 환경이었을 것이라는 게 북한문제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통일전선부를 비롯, 노동당 대남사업 부서가 밀집해 있는 '3호청사' 에 우리측의 분야별 정보와 인물파일이 체계적으로 수집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탈북자들에 따르면 주요 인물파일은 통일전선부 조직자료과와 조국통일연구원에 보관돼 있다.

예를 들어 '김대중파일' 에는 성장과정.정치역정.정책성향.성격 등 金대통령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한다.

과거 5.16쿠데타 직후 북한이 수집한 박정희(朴正熙)소장에 대한 파일꾸러미가 1m를 넘었다는 고위급 탈북자의 증언을 감안하면 金대통령 파일은 이보다 훨씬 분량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측 관계기관은 우리측 도서.방송화면 등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이다.

金대통령 취임 이후 북측이 중국을 통해 대통령 관련자료를 대량 입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베이징(北京)의 한 중계업자는 "2년 전쯤 북한 사람의 부탁을 받고 金대통령의 회고록.전기 등을 대량으로 구입해준 적이 있다" 고 밝혔다.

북측은 또 대화스타일 파악을 위해 金대통령의 활동상황이 보도된 방송화면도 녹화해 집중 분석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뿐 아니라 자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金대통령과 친분이 있거나 직접 만났던 인물이 쓴 보고서도 참고했을 것이다.

예컨대 해방후.전쟁기간에 월북한 목포상고 출신이나 최근 월북자들이 대상인물이다.

최종 완성된 '김대중파일' 은 정상회담 준비를 총괄하는 김용순 통일전선사업 담당비서를 거쳐 金위원장에게 보고됐을 것이다.

金위원장은 미지한 부분에 대해 조국통일연구원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관계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하기도 했을 것이다.

1997년 월북해 현재 조평통 부위원장으로 있는 오익제(吳益濟)씨를 만나 궁금증을 풀었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DJ학습에서 조국통일연구원이 핵심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75년 9월 설립된 남조선문제연구소의 후신인 이 연구원은 ▶남측 정치.경제.사회.군사 등 각 분야에 대한 정세연구 및 대남정책 자료 작성▶남측 주요 인물정보 분석▶미.일 등 한반도 주변국가의 대한(對韓)정책 수집.연구 등을 다뤄왔다.

90년대 들어 조국통일연구원으로 개편되면서 조평통.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등 대남부서와 함께 한국 관련 각종 현안을 다루기 시작했다.

조직개편과 함께 김일성종합대학.평양외국어대학.국제관계대학 졸업생들 가운데 우수 인재를 본격 영입, 규모를 확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소 책임자(원장)는 소설가 이기영의 둘째 아들인 이종혁이고 원동연 부원장.박동근 실장 등이 전면에 포진해 있다.

이들은 다양한 남측 정보.자료를 수시로 접하고 국제학술회의에도 자주 참석해 해외사정에도 밝다.

남북 정상회담 준비접촉 북측 단장으로 나와 주목을 끈 김영성도 남조선문제연구소.조국통일연구원에서 20년간 근무하며 한국문제를 다룬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특히 문장실력이 뛰어나 김정일 위원장에게 제출하는 '1호문건' 작성자로 활동한 측근이다.

그밖에 金대통령-金위원장간의 예상 대화록은 전금철.안경호.박영수 등 조평통 '대화일꾼' 들이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작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조평통 관계자들은 정상회담 발표 직후부터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시나리오 작성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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