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던져 남을 구한 ‘시민영웅’ 12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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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시민영웅 시상식’을 마치고 수상자들과 행사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영일 S-OIL 부사장, 이재환(의상자상), 김득린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 차상근(활동자상), 이지완(활동자상), 조명래(활동자상), 아흐메드 에이 수베이 S-OIL CEO, 전억상(의사자상을 수상한 고 전형찬씨 부친), 황석명(의상자상), 김남일(의상자상), 강병완(활동자상), 원정남(의상자상), 정순희(의상자상), 전경일(의상자상), 권오태(활동자상), 김민석(활동자상). [최승식 기자]


고(故) 전형찬(24)씨는 지난달 19일 오후 7시, 경북 상주시 낙양동 자신의 원룸에서 비명소리를 들었다. 대학생인 전씨는 학교에서 돌아와 책을 읽던 중이었다. 그는 비명소리가 들린 옆집 문을 두드리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부부싸움이니 신경쓰지 말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등을 돌리던 순간 집주인 박모(29·여)씨가 “강도야”라고 소리쳤다. 옆집에 살던 박씨와 안면이 없던 전씨였지만 문을 열고 박씨를 잡고 있던 김모(39)씨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김씨와 격투를 벌이다 흉기에 가슴과 복부를 수 차례 찔렸다. 이 와중에 박씨는 밖으로 빠져나가 경찰에 신고했다. 전씨는 과다 출혈로 의식을 잃었다. 박씨의 신고를 받고 사건 발생 30분 만에 출동한 경찰은 원룸 현관에서 숨져 있는 전씨를 발견했다.

17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연회장. 전씨의 아버지 전억상(58)씨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쳤다. 어머니는 말없이 손수건으로 연방 눈물을 찍어냈다. 아버지 전 씨는 “2대 독자인 아들은 초등학교 때도 4㎞가 넘는 거리를 걸어다니면서 다른 친구에게 버스표를 양보하던 아이였다”고 말했다. 이날 전씨처럼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작은영웅’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강도를 쫓다 목숨을 잃은 전씨의 가족과 의로운 일을 하다 부상당한 12명이다. 이들은 S-OIL(에쓰오일)과 사회복지협의회가 주관한 ‘제2회 시민영웅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다.

선박회사에서 유조선 선장으로 일하는 차상근(54)씨는 올 1월 필리핀 근처 남중국해를 지나다 “빈 딘 리버호 침몰중”이라는 구조요청을 받았다. 원유 4만t을 싣고 일본에서 싱가포르로 가던 중이었다. 당시 해상은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 있었다. 선상에서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지만 차 선장은 뱃머리를 돌렸다. 1시간을 항해해 조난 현장에 도착, 베트남 선원 15명을 전원 구조했다. 차 씨는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 뿐”이라고 말했다.

‘작은영웅’들은 가정주부·회사원·학생 등 이웃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부산에 사는 가정주부 정순희(45)씨는 올 2월 집으로 가던 중 한 여성을 폭행하던 남성을 말리다 치아가 부러지는 등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었다. 택시기사 원정남(54)씨는 술집에서 말다툼을 하던 남성이 흉기로 주인을 찌르려는 것을 몸으로 막았다. 이 과정에서 왼쪽 배를 흉기에 찔려 전치 5주의 상해를 입었다. 원씨의 도움으로 술집 주인은 목숨을 구했다. 광양제철고 2학년인 김민석(17)군은 올 7월 25일 전남 광양군 백운산 옥룡계곡에서 물에 빠진 문모(16) 형제를 구출했다.

S-OIL은 시민영웅 의사자 전씨 가족에게는 2000만원의 위로금을,시민영웅 의상자 등 12명에게는 1000만원의 상금을 각각 지급했다.

강기헌 기자 ,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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