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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 조용하게 확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이리저리 세파에 부대끼며 살다보면 말 못할 사연들이 많다.솔직하게,속 시원히 터져나오지 못한 그 사연들은 가슴을 까맣게 태우다가 끝내 속앓이가 되고 나아가 가정과 사회를 멍들게 한다.그러나 우리의 본래 마음에는 시비도 분별도 없이 늘 차분하고 평화롭다.

혼란해진 마음을 본래 마음과 대조해가며 잘 사용해 진정한 마음의 주인이 되자는 '마음공부' 가 사회 각계각층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각급 학교 교육에는 물론 직장.지역 사회 단체까지 참가해 개인적 행복은 물론 서로 이해하고 돕는 상생의 사회를 추구하고 있다.

지난 5일 오후7시 서울 충무로에 있는 원불교 서울 중구 교당. 대학생 20여명이 한달에 두번씩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 곳이다.

서울대.이화여대.숙명여대.서울시립대생 등이 모이는 이 대학마음공부방은 1년 6개월째를 맞았다. 다음 학기부터는 대학별 마음공부방으로 확대, 운영할 계획이다.

학생들은 저마다 최근 마음에 깊게 새겨질 정도로 겪은 일들을 그대로 써온 '마음의 일기' 를 발표한다.

이 일기를 가지고 서로 문답과 대화를 나누며 마음이 움직이는 바를 살피고 나아갈 방향을 찾는다.

이 과정에서 동년배들이 느낄 수 있는 인간.사회관계와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차차 해소된다. 그리고 결국 한마음의 소유자임을 알게 된다.

1년6개월간 이 마음공부방에 참석하고 있는 채일택(서울시립대 2년)씨는 "예전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말하고 본마음을 억누르며 좀더 거창한 말을 하려 애썼는데 마음 공부를 하고부터는 내 마음을 그대로 열어보일 수 있게 됐다" 고 밝혔다.

채씨에게 '인생상담' 을 부탁하는 친구들도 부쩍 늘었다. 이들과 마음을 열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마음공부다.

지난 7일 오후7시 전북 익산시 솔솔송 자원봉사대 강당. 한달에 두번씩 열리는 '익산시민마음대조공부방' 에는 남녀노소 70여명이 모여 화기애애하게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

대학교수에서 유치원생, 기업체 사장부터 택시 기사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참석해 사연과 마음 씀씀이를 털어놓았다.

송순경(원광대 가정학)교수는 불화에 싸인 동생 부부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에 싸여 있다고 털어 놓았다.

이론적인 해답은 알고 있지만 차마 그렇게는 못하고 안타까와하던 그는 문답과정에서 그들을 위한 자신의 마음만 드러내 보여주면 그 뿐, 그 말에 따르든지 않든지는 그들의 마음이라는 데에 도달하자 마음의 안정을 얻는 듯했다.

마음공부에는 스승도 제자도 따로 없다. 참가자 모두가 가르치는 자이면서 배우는 자다. 교과서도 따로 없다.

"마음 자체가 교과서다. 그렇게 하나 된 마음, 본래의 마음을 가지고 어떤 일에 닥쳤을 때 움직이는 마음을 공부하면서 인간은 모두 하나임을 깨달아 개인적 평온을 찾고 서로 이해해 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하는데로 나아가는 것" 이라는게 생활 속의 마음공부를 이끌고 있는 원불교 장산 종사의 말이다.

마음공부는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1891-1943)가 큰 깨달음을 얻은 뒤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쉽게 터득할 수 있도록 한데서 비롯됐다.

3대 대산 종법사에게 오랜 가르침을 받았던 장산 종사와 제자 박선태 교무가 7년전부터 일반을 상대로 지도하기 시작하면서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다.

마음공부를 한 교사들이 각급학교에 돌아가 학생들을 상대로 지도하고 있으며 교수.교사들의 서울중구교당 모임(011-709-9087), 정신과 의사와 함께하는 마음학교(02-487-9161), 대덕연구단지 연구원 마음학교(042-861-5966)등 전국에 30여개 마음공부 모임이 생겨났다.

1995년부터 매년 여름.겨울 두차례씩 마음공부 모임을 이끌고 있는 박선태 교무(011-9705-9908)는 8월5~7일 전북 삼례에서 전국의 마음공부 지도자 1백여명과 마음공부연구회를 갖는다.

지식이나 진리의 거창한 가르침에 힘입기 보다 제 마음의 참 주인이 돼 일상 속에서 자신의 본디 마음, 진리를 살자는 운동이 조용히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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