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24시] 세대교체 김빼는 세습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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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일본은 가업(家業)의 대물림 전통이 강하다. 3, 4대째 하는 국수집.초밥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종의 천직(天職)의식이 엿보인다.

정치도 예외가 아니다. 부모나 친족한테서 지역구를 물려받은 세습의원이 수두룩하다. 현재 4백99명인 중의원 의원 가운데 1백32명이 세습의원이다. 네명 가운데 한명 꼴이다. 정당 중에는 자민당이 98명으로 단연 으뜸이다.

오는 25일의 총선을 앞두고 새삼 세습 정치에 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원로들의 은퇴 바람이 불었지만 대부분 지역구를 친족에게 넘겨줬기 때문이다.이번 선거만큼 세대교체가 두드러진 적은 없었다. 여야를 합쳐 중진 40명이 입후보를 포기했다. 평균 나이는 71.8세다. 정치판의 물갈이, 새 피 수혈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각 당의 공천이 확정되면서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지고 있다. 은퇴를 선언한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전 총리와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전 관방장관의 지역구는 동생 와타루(亘)와 아들인 히로시(弘志)가 맡았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전 총리의 후계도 차녀인 유코(優子)다. 현직 의원을 빼고 세습 후보는 32명에 이른다.

세습 정치인들은 일찌감치 익힌 정치 감각과 정책 계승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와타루.히로시.유코도 하나같이 선대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겠다는 포부다. 2세의원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전 후생상은 "생선가게도, 야채가게도 대대로 해야 신뢰를 받는다" 고 했다. 국회 답변에서다.

물론 실력파 2세의원은 한 둘이 아니다. 오부치.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전 총리,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자유당 당수는 대표적이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민주당 대표는 4세 의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세습에 대한 시민단체의 우려는 강하다. 정치판의 신진대사를 통한 활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선거도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바뀌어 신인.전문가의 당선 가능성도 낮아졌다.

세습이 뿌리를 내린 것은 은퇴 의원이나 개인 후원회의 욕심 때문만은 아니다. 유권자측도 한몫 했다. 지방자치단체나 업계, 각종 단체는 새 인물보다 구관(舊官)의 '브랜드' 로 중앙과의 파이프를 만들려 했다. 세습 풍토에 일본 유권자가 어떤 심판을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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