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협력 체제 본궤도 들어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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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미묘한 문제지만, 천황이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좋다고 본다.”

일본에서 자민당 정부 때 일 외무성의 간판 스타였던 야나이 슌지(柳井俊二·72)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은 일본 국왕의 내년 방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직접 관여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기본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혔다.

최근 동북아역사재단 초청으로 방한해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 총리가 제창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의의와 과제에 대해 강연한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는 여건상 당분간은 어렵지만, 한·중·일 협력 체제가 본격 단계에 들어선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또 “국제해양재판소(재판관 21명)는 국가간 분쟁을 조정하는데 지금까지 15건을 해결했다”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의 외교관으로 재직할 당시 한국에 근무한 적이 있고, 관료로서는 최고위직인 사무차관을 거쳐 주미 대사를 지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2006.9.~2007.9.) 때는 총리 자문기구인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 재구축 간담회’의 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방한 기간 중에 지난해 11월에 작고한 박춘호 전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을 참배하기 위해 유족과 함께 대전 국립묘지를 찾아가기도 했다.

-박 전 재판관의 인연은.

“선배인 그로부터 많이 배웠다. 그가 쓴 일본 국제법 관련 책을 읽고 공부하기도 했다. 내가 2005년 처음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으로 당선했을 때 그는 9년 임기의 1기를 마치고, 2기째 당선됐다. 그가 작고했을 때 중요한 일이 있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었다.”

-하토야마 정부와 미국 정부의 사이가 좋지 않은데.

“오키나와(沖繩)현의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에 대해선 (집권) 민주당 내에서도 통일된 의견이 없고 각료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의 지인들은 미일 관계에 대해 걱정이 많다. 하토야마 정부는 대등한 일미 관계를 주장하지만, 미국인들은 ‘무엇이 대등한 관계인가’라고 묻고 있다. 하토야마 정부가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중시하는 것은 좋지만, 일·미 동맹에 대해 미국에 불안감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토야마 총리가 주창한 동아시아 공동체의 실현 가능성은.

“공동체 창설을 위해선 역내 국가들이 주권 일부를 공동체에 이양해야 할 것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아시아에는 남북한, 중국·대만 등에서 아직 냉전의 흔적이 남아있어 이들 국가가 국제기구에 주권 일부를 이양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동아시아 공동체는 당분간은 어렵겠지만, 느슨한 관계의 ‘지역 협력’을 진전시킬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특히 국내총생산(GDP) 총액에서 세계의 약 16%를 차지하는 한·중·일 3국의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한·중·일의 협력 관계가 어느 상태라고 평가하는가.

“구체적인 협력 관계에 들어섰다. 3국이 올해 10월 2차 정상회담을 열고 3국 협력 10주년을 기념하는 공동성명 등을 채택한 것은 매우 의미가 깊다. 경제 등 13개 분야에서 각료급 회의를 개최하는 것도 매우 주목할만한 사건이다. 3국의 지역 협력이 본격 시작됐다. 아세안+3 등 동아시아에서의 중층적인 협력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한국은 내년에 아프가니스탄에 지방재건팀(PRT)을 보내기로 했다. 일본의 아프간 지원은.

“자민당 때는 교육·복지·의료 등 민생 지원을 많이 했다. 테러 대책 관련해서 인도양에서 급유 지원도 했는데, 민주당은 이를 중단하고 민생 지원을 더 하겠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민간인들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데, 현지 치안 문제 때문에 민간인을 보내는 데는 어려움도 많을 것이다.”

-아베 정권 때 ‘안전보장 간담회’ 좌장으로서 무엇을 했는가.

“특정 조건 아래서 집단적 자위권 일부 인정 등을 골자로 한 보고서를 만들어 후쿠다(福田) 내각에 제출했으나,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글=오대영,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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