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대안, 외국사례에서 배운다 <4·끝> 카자흐스탄의 신행정수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2면

수도 자리를 내준 후 알마티는 금융허브로 변신하려 노력하고 있다. 사진은 알마티에 신축 중인 금융센터 빌딩들. [안성식 기자]

일요일이었던 지난달 29일 오전 9시40분. 옛 수도인 알마티에서 북쪽으로 1300여㎞ 떨어진 새 수도 아스타나로 향하는 국내선 항공기를 탔다. 좌석수 170석인 이 비행기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만석이었다. 승무원은 “주말에는 대부분 그렇다”고 밝혔다. “아스타나에 직장이 있는 공무원과 공기업 임직원 중 알마티에 가족을 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알마티-아스타나 왕복 항공료는 400달러. 8000여 달러인 1인당 국민소득(지난해 추정치)에 비하면 비싼 편이다. 평일에는 기업인들이 주승객이다. 기업은 대부분 알마티에 있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 독립기업인협회 탈갓 아쿠오브 회장은 “사업 인허가 등 대(對)정부 업무 관계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아스타나에 출장간다”면서 “지금은 많이 줄어든 편”이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꼴로 방문했다는 것이다. 그가 경영하는 회사의 본사와 연합회 사무실도 알마티에 있다.

◆국가 안보 목적은 달성=1997년 수도를 옮긴 건 여러 이유 때문이다. 균형발전 목적을 우선 들 수 있다. 국가전략연구소 마리안 아비셰바 박사는 “알마티가 있는 남쪽 지역에 인구가 편중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도권 과밀 해소도 이유였다. 니콜라이 티호뉵 건설처 부처장은 “4만㏊(서울의 3분의 2 정도)의 알마티에 120만 명이 집중해 도시가 성장 한계에 부닥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국가 안보 목적이 가장 컸다. 1950년대 말부터 러시아인들이 카자흐스탄 북부에 본격적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60년대 초에는 전체 인구(930만 명) 중 러시아인이 43%로 카자흐인(30%)보다 더 많았다. 91년 소련에서 독립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북부 지역이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 수도를 북쪽으로 옮겼다.

이전 11년째인 지금 국가안보 목적은 달성했다. 총인구(1573만 명) 중 카자흐인이 60%로 러시아인(26%)의 두 배가 됐다. 균형발전 목적도 어느 정도 달성했다. 아스타나 주민 수가 수도가 되기 전 27만여 명에서 68만 명으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지역 총생산액도 13배 증가했다.

◆이전 비용은 엄청나= 하지만 카자흐스탄은 엄청난 돈을 썼다. 수도 이전 비용으로 지금까지 100억 달러를 투자했다. 국내총생산(2007년 1034억 달러)의 10분의 1이다. 게다가 앞으로가 더 문제다. 아스타나시 기업·산업국 메데르 마셀로프 부국장은 “이제 겨우 수도발전 계획의 1단계가 마무리됐을 뿐”이라고 밝혔다.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현지 교민들은 “아스타나는 황량한 벌판”이라고 평가한다. 기업 등 산업시설은 물론 학교·쇼핑몰·문화시설 등 도시공간이 태부족이라는 이유에서다. 웬만큼 도시 기능을 갖추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아스타나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마셀로프 부국장은 “조만간 교육·과학·문화도시로 발전시키려는 2단계 공사를 시작한다”고 했다. 대학을 설립하고, 오페라 극장과 박물관·도서관 등을 건설할 계획이다. 관건은 돈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들어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재정수입이 많았다. 세계 9위의 산유국인 때문이다. 알마티상공회의소 무크탈칸 비야로브 부회장은 “석유 팔아 아스타나를 건설했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카자흐스탄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2단계 공사의 재원 확보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인구가 세 배 늘었다고 하지만 곰곰 따지면 허상도 있다. 증가된 인구의 대부분이 공무원과 공기업 임직원이라서다. 아스타나시 건축·도시계획국 사르센벡 주누소프 국장은 “공무원과 공기업 인원이 10만 명”이라며 “가족까지 합치면 30만~35만 명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원래 아스타나에 27만여 명이 있었던 걸 감안할 때 공무원을 제외하면 실제 늘어난 인구는 10만 명 안팎이란 얘기다. 경제적 효과만 따진다면 수도 이전은 매우 비효율적인 투자라는 방증이다.

◆기업 불편은 막심= 민간 기업들은 대부분 알마티에 있다. 아쿠오브 회장은 “국내 비즈니스의 70%가 알마티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스타나로 옮겨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비야로브 부회장도 “주요 은행들의 본점도 다 알마티에 있다”고 밝혔다. 알마티가 기업과 금융의 중심이라는 설명이다. 카자흐스탄 상공회의소도 알마티에 있다. 회원사들이 대부분 알마티에 있어서다. 이 때문에 정부 정책 동향을 파악하고 회원사들의 애로사항을 전달하는 데 고생이 많았다. 그래서 부회장을 아스타나에 파견시켜 놓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 직속인 국가전략연구소도 알마티에 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기업인들의 출장이 잦다. 특히 중앙정부가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기업인들은 아스타나를 안방 드나들 듯해야 한다. 정치 때문에 경제를 희생한 셈이다.

◆특별취재팀=김준현·김성룡(독일), 김선하·강정현(호주·일본), 김영욱·유철종(카자흐스탄)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