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 투자손실 ‘위법행동’ 증명 어려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2면

키코(KIKO) 소송, 월가의 보너스 규제,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 징계…. 국내외 금융시장의 뜨거운 이슈들에 대해 윌리엄 라이백(사진) 전 금융감독원 특별고문은 거침없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은행감독 부문 수석이사를 거쳐 홍콩 금융당국 수석부총재를 지냈다. 이후 2007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금감원에서 특별고문으로 일했다.

그는 이번에 한국경제교육협회 초청으로 8개월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설립된 한국경제교육협회는 이번에 창립 1주년을 맞아 ‘G20 성공개최를 위한 오피니언리더 경제교육’ 행사를 17일까지 연다. 다음은 일문일답.

-키코(KIKO) 문제에서 은행의 잘못이 있다고 보는 이유가 뭔가.

“키코 소송은 199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P&G와 뱅커스트러스트 간의 이자율 파생상품 관련 소송과 비슷하다. 당시 은행 측은 ‘우린 투자 중개를 했을 뿐 기업에 자문을 한 게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뱅커스트러스트는 피해액 일부를 물어주고 합의했다. 키코도 마찬가지다. 은행은 키코를 사는 기업을 투자자로 여겼을지 몰라도, 기업은 은행이 좋은 자문을 해주는 걸로 봤다. 바로 이게 핵심 이슈라고 본다. 은행은 키코를 팔면서 극단적인 경우 큰 손실이 있다는 걸 들여다봤어야 하는데 무시했다. 계약서에 손절매에 대한 내용도 없었다. 은행이 어느 정도 잘못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은행이 100% 다 책임이 있다고 보는 건 아니다. 사실 키코에 가입한 기업도 이런 점을 들여다봤어야 했기 때문이다.”

-최근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이 파생상품 투자손실을 이유로 징계를 당했다. 투자손실을 이유로 금융사 경영자를 징계할 수 있다고 보나.

“징계는 가능하다. 미국에서도 금융회사 경영자를 강제로 그만두도록 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금융회사가 알아서 자체적으로 처리토록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징계를 당한 사람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하면 대부분 정부가 진다. ‘어리석은 짓’과 ‘위법행동’은 다르다. 법정에선 법에 어긋나는 의도를 가지고 투자했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데, 이는 매우 어렵다.”

-한국은 자본시장법 도입으로 금융상품 자율화를 추구했지만 금융위기 이후 주춤하다. 자율화가 맞는 방향일까.

“맞다. 새롭고 다양한 금융상품을 개발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그런 시장을 따라올 만큼 투자자의 수준이 올라올 수 있느냐가 문제다. 잘못되면 키코처럼 금융권이 비난받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 금융허브로 가려는 의미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영국은 금융회사 보너스에 중과세를 하고, 미국은 보너스 상한제를 논의 중이다.

“말도 안 된다. 정치적으로는 좋아 보일지 몰라도 시장 시스템 면에선 맞지 않는다. 물론 씨티은행의 에너지 트레이더가 연봉을 1억 달러나 달라고 하는 건 곤란하다. 돈을 더 주면 그만큼 추가 수익을 올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은행도 헤지펀드처럼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상업은행엔 그런 고액연봉이 맞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바꾸기 위해 가장 먼저 나서는 건 정부가 아니라 은행이어야 한다. 국회는 은행이 스스로 못하면 그때 나서면 된다. 이미 미국의 금융회사 임원들이 많이 바뀌고 있다. ”

-위안화 평가절상에 부정적인데.

“중국 정부가 노동집약적 수출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소득이 충분히 올라올 때까지는 싸게 많이 수출해 달러를 긁어 모으려 할 것이다. 현재로선 위안화가 절상되면 위험도 크다. 중국 통화가치가 올라가면 외국 자금이 쏟아져 들어와 중국 주식·부동산시장에 거품을 만들 것이다. 만약 그게 터져버리면 전 세계가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당분간 위안화 가치를 올리는 일은 없을 거다.”

글=한애란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