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영 기자의 장수 브랜드] 최초 기성화 ‘금강제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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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국내 최초 기성화 브랜드인 ‘금강제화’는 1954년 태어났다. 경기도 안성 출신인 창업주 김동신(1921~97) 전 회장이 서울 서대문 적십자병원 맞은편에 작은 구둣방 ‘금강제화산업사’를 낸 것이 모태다. 북한흥남기술전문학교를 졸업한 김 전 회장은 함흥에서 제화사업을 하다가 서울로 옮겨와 구둣방을 열었다. 초기엔 수제화였지만 60년대 초반 광화문에 기성화매장 1호점을 내면서 본격적인 기성화 시대를 열게 된다.

그는 구두도 표준화를 해보겠다며 대량생산 설비를 갖췄다. 맞추면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수제화와는 달리 여러 가지 사이즈와 디자인이 구비돼 있고, 직접 신어보고 고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큰 인기를 끌었다. 광화문점과 명동점은 대학을 졸업하거나 입사를 하게 되면 으레 들르는 코스였다. 전성기엔 기다리는 고객에게 번호표를 나눠 주고 매장 문을 닫은 후 손님이 구매 후 매장에서 나가면 그 다음 손님들이 입장하는 진풍경도 종종 연출됐다.

세일 때 명동 매장 유리가 부서지는 일도 있었다. 종로 매장에서는 계산하기 위해 광화문 근처까지 줄을 서기도 했다. 금강제화가 입점한 백화점에서는 시간당 가드레일을 놓고 몇 명씩 끊어서 들어가야 판매하기도 했다.

69년에 나온 베스트셀러 신사화 ‘리갈’은 정장화 고유의 윙팁(날개 모양의 절개선)이 특징이었다. 한때 소비자 물가지수 측정 품목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판매된 것이 약 750만 족. 73년에는 자회사 ㈜대양이 만든 캐주얼화 ‘랜드로바’가 매장에 등장했다. 정장 신발 일색이었던 당시 청바지에 어울리는 신발을 내놔 인기를 끌었다. 랜드로바라는 브랜드가 캐주얼 신발과 동격으로 인식됐다. 70년대 말은 구두 상품권으로 제화시장 규모가 크게 커진 시기다. 금강이 도입하자 후발주자들도 따라왔다.

금강은 92년까지 남성화 브랜드로 운영되다가 리갈에 통합됐다. 이후엔 30여 개 다양한 브랜드를 파는 종합 신발매장의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지금까지 금강제화 브랜드를 달고 생산한 신발은 약 2억 족. 일렬로 놓았을 때 지구 두 바퀴 반을 도는 수치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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