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서산농장 우선 매각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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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현대그룹은 정부와 채권단이 현대건설 자금난 해소를 위한 그룹 차원의 자구책 마련을 거듭 강하게 요구하자 당황해하면서 숨가쁘게 움직였다.

현대는 정부와 채권단의 요구 사항을 ▶유동성 확보 등 자금확보 ▶우량 계열사 매각 ▶정주영 명예회장과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등 일부 핵심 경영진 퇴진 등 세가지로 파악하고 이를 중심으로 다각적인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그룹측은 우선 자금난을 겪고 있는 현대건설에서 보유 주식과 채권 등 유가증권(3천8백억원 상당)과 서산농장.서울 무교동 사옥 매각 등 총 5천8백억원 규모의 유동성 확보 방안을 외환은행측에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현대는 자산 가운데 서산농장을 매각하거나 이를 담보로 자금을 빌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금감위 관계자가 현대 구조조정본부에 직접 요구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현대로선 서산농장을 담보로 유동성을 확보하고, 동아건설의 김포 매립지와 같이 추후 정부에서 매입해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서산농장은 3천1백만평으로 장부가액이 6천4백억원인데, 농지라 공시지가는 이보다 다소 낮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은 ▶토지 8천84억7천9백만원▶건물 1천3백9억9천1백만원 어치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1999년 말 기준).

현대건설과 함께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은 현대상선은 28일 해명자료를 통해 올해 매출만도 5조원에 이르는 등 전혀 문제가 없다고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현대는 "자금난은 현대건설만의 문제이며 나머지는 그룹 차원에서 움직일 필요가 없다" 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우량 계열사 매각 후보로 현대전자.증권.중공업.자동차 등이 거론되고 있다.

가장 우선적으로 현대전자가 거론되는데 통신과 액정박막표시장치(LCD)부문을 분리한 뒤 매각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과 LCD는 지난해 매출이 총 1조3천억원 규모로 사업성이 좋아 매각할 경우 돈이 되리라는 판단에서다.

현대 관계자는 "이들 두 부문의 매각을 추진하는 것은 무리가 없으나 원매자가 쉽사리 나타날 것 같지 않아 시간이 걸릴 것" 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현대중공업.자동차 등은 정몽헌 회장이 직접 관할하는 계열사가 아니어서 실현성이 약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대는 이와 함께 鄭회장의 일본 방문으로 지지부진한 현대석유화학(1천5백억원 규모)의 매각과 일본의 경협자금 확보가 가시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경영 일선에서의 완전 퇴진은 사실상 계열사 이사직 포기로 이미 끝난 얘기라는 입장이다. 또 이익치 회장 퇴진은 이번 사태와 관련이 없는 문제라고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사태 추이에 따라 내놓을 수 있는 방안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과 이번 사태의 진앙지인 현대건설.현대상선의 재무담당 임원들은 27일 오전 서울 계동 본사에서 대책회의를 연 뒤, 이날 오후부터 시내로 장소를 옮겨 대책을 숙의했다.

정부가 증권시장이 열리는 29일 이전에 시장이 납득할 만한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현대측은 27일 현대증권 주주총회에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이창식 현대투신 사장을 유임시키는 등 문책 인사는 곤란하다는 입장이었으나, 이날 오후 정부와 채권단 회의를 통해 강경한 입장이 전달되자 다소 술렁였다.

결국 현대는 28일부터 이익치 회장의 퇴임 문제를 조심스럽게 거론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시래.황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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