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추천서로 학생을 선발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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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대가 새로운 내용의 2002학년도 입시안을 발표하자 여러가지 우려와 기대가 뒤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중 두드러진 것이 논술고사 폐지와 추천서 의무화에 대한 우려다.

대학별 고사의 폐지로 무시험 전형의 틀이 갖춰짐에 따라 학생들의 시험 부담이 줄고 학교 교육의 정상화가 제대로 자리잡는다면 그보다 다행스런 일은 없다. 그러나 성적 부풀리기 등 내신관리가 불신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대학은 무엇을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할 것인가.

미국식 추천서 의무화는 우리 교육풍토에선 당장 치맛바람.엉터리 추천 등의 부작용으로 나타날 게 너무 뻔할 것이기 때문이다.

입시경쟁이 과열된 우리 현실에서는 어떤 내용의 대입제도든 완벽할 수 없고, 교육현장에 미치는 부담과 역기능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대입제도에는 교육정책적 목표를 지향하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입제도를 바꾸는 시행착오를 반복해 왔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의 새 입시안은 교육당국의 정책 욕심에 밀려 교육현실을 간과했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논술고사 폐지부터가 그렇다. 논술고사는 학생들의 사고력.창의력.비판력을 키워 암기위주의 입시교육을 바로잡는다는 취지로 도입된 것이다.

그동안 관리상의 어려움과 잡음도 있었지만 정착단계에 있는 제도를 갑자기 없앤 것은 2002학년도부터 대입 무시험 전형제를 시행하겠다는 교육부의 방침이 강하게 작용한 탓이라고 본다. 추천제 의무화도 고교가 그같은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현실적 고려는 하지 않고 전형자료의 다양화라는 목표만 좇아 도입했다.

무시험 전형이든 추천제 의무화든 제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시행할 여건이 돼있는지, 또 그것이 대학과 고교의 교육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서울대의 입시안에는 주체인 대학의 선발권이 실종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수능시험이 등급제로 전환한 상태에서 논술고사마저 폐지한다면 대학이 필요로 하는 학생을 어떤 기준, 어떤 자료로 뽑을 것인가.

입시정책의 기본 방향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이상에 치우쳐 현실을 무시한다는 게 문제다. 서두르면 부작용이 커지고 그것이 정책 불신으로 이어진다.

서울대 입시안이 그럴 가능성이 크다. 무시험 전형이 제대로 정착될 때까지는 적절한 전형자료를 유지해야 한다.

어제 열린 서울대 주최 보완세미나에서 제기된 것처럼 수능시험의 난이도를 유지하고 등급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논술고사도 고사방법을 고쳐서라도 존치해야 한다. 서울대가 폐지하면 여타 대학 모두가 따라 논술고사를 폐지하는 게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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