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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해묵은 '바이러스 수돗물'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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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학자의 양심을 심판하겠다. " (서울시)

"그 사람 혼쭐이 나야 돼. " (환경부)

서울 관악구와 논현동.잠실 일대의 수돗물에서 무균성 뇌수막염 등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나왔다고 발표한 서울대 생명공학부 김상종(金相鍾)교수에 대한 공무원들의 코멘트다.

서울시가 그를 지난 23일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자 수돗물 담당 공무원 중 상당수는 '잘 됐다' 는 표정이다.

"수돗물은 안전한데 金교수가 3년째 국제공인도 안된 검사방법을 동원해 '바이러스' 불신을 조장, 우리만 골탕 먹고 있다" 는 주장이다.

金교수가 매달 바이러스를 검사했다면서 근거자료 조차 제시하지 않고 사실을 왜곡, 발표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金교수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논문이 5개월간의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국제 미생물학 권위지 5월호에 실렸고 한국미생물학회에도 보고했는데 이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은 '공무원들의 무지 탓' 이라는 것이다.

金교수는 "미국 환경청(EPA)이 규정한 수질검사 방법인 세포배양법에 '유전자 분석법' 을 추가한 결과 매달 바이러스가 나왔다" 며 "학자의 양심을 걸고 법정에서 모든 사실을 밝히겠다" 고 주장했다.

시민의 건강과 직결된 수돗물. 이를 고소사태로 몰고가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수도권 시민 1천명 가운데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시민은 1.4%에 불과하다는 한국갤럽의 여론조사(1998년)에서 보듯 수돗물 불신은 심각한 상황이다.

'바이러스가 나왔다' '환경호르몬이 들어 있다' 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당국은 늘 검사방법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게다가 1천만 시민의 건강을 책임진 서울시는 자체 검사 인력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학자의 연구결과를 고발하는 행동을 했다.

수돗물 수질에 조그마한 위험성이라도 감지되면 먼저 정밀조사를 하는 등의 적절한 조치로 시민을 안심시켜야 되는 게 아닌가.

해묵은 감정싸움에 앞서 서울시와 정부는 金교수와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검사방법을 동원해 조속히 바이러스 진위를 가리는 게 옳다고 본다.

金교수도 사법적 조사에 앞서 월별 바이러스 검사 근거자료 등을 당당히 밝히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양영유 전국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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