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사태, 日엔 남의 일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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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호 30면

일본인들에게 “지난해 경제가 왜 추락했을까”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리먼 사태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년 뒤엔 “두바이 사태 때문”에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졌다고들 말할 것이다. 일본은 2008년 9월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붕괴된 이후 주요 경제권 국가 중 첫 번째로 급격하게 추락했다. 가장 빨리 위기를 겪었기 때문에 경제 회복도 가장 빨리 나타났다. 앞으로는 아마 ‘더블딥(이중침체)’을 가장 먼저 경험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

일본은 최근 7조2000억 엔(약 810억 달러)에 이르는 경기 부양책을 수립했다. 그리고 해외 투자자들에게 부과한 회사채 이자소득에 대한 15%의 세금을 면제해 주기로 했다. 당장 해외 투자를 유인하는 데는 맞는 정책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러한 단기 처방책으로는 일본 경제의 장기 성장을 복원할 수 없다.

과거 15년 동안 일본은 매년 통화 공급을 늘려 왔다. 그 여파로 일본은 주요 경제국들 가운데서 공공 부채 규모가 가장 크다. 기업들은 제로금리에 중독돼 있다. 전 세계가 과도한 부양책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구전략’을 모색할 때 일본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인구가 고령화되고 지나치게 수출 의존적인 경제 체제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자본 수익률은 떨어지고 엔화 가치가 오르면서 생산 비용이 증가한다. 생산 비용을 줄이려고 기업들은 임금을 깎고 사람을 자른다. 결과적으로는 디플레이션만 불러올 뿐이다.

일본 경제의 축소판이랄 수 있는 일본항공(JAL)과 일본우정공사의 경우를 보자. 빚더미를 짊어진 JAL을 살리기 위해서 일본 정부는 7000억 엔에 이르는 채무 지급보증을 서기로 했다. 정실주의가 부활하면서 일본 내 금융기관 중 최대 저축액(전체 저축액의 60%)을 보유한 우정공사의 민영화 계획은 미뤄졌다. JAL이나 우정공사 모두 경쟁력을 잃고 효율성은 떨어진다. 급증하는 공공 부채도 문제지만 일본은 중국·인도·한국 등에 비해 생산성도 떨어진다.

일본에 다시 디플레이션이 나타난 것을 ‘검은 백조(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상징)’처럼 취급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아니다. 일본은 지난 20여 년 동안 비용을 줄이고 과잉 생산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경기 부양책과 엔화 가치 약세에 의존해 경제가 연명해 왔다. 이런 두 가지 처방책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제로금리 정책에 따른 ‘캐리 트레이드’ 수요는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계속 제로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엔 캐리가 아니라 달러 캐리 트레이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되레 엔 캐리 자금이 상환되면서 엔화 가치가 강세로 돌아섰고, 이는 도요타자동차 같은 수출 기업에 타격을 준다.
또 글로벌 위기 이후 전 세계인은 일본이 생산하는 고급 차나 가전제품이 아니라 값싼 다른 아시아 제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일본 제품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살아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단기 처방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산업 시스템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산업 시스템의 변화에는 몇 년이 소요될 수 있다. 그래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래야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리먼이나 두바이처럼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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