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 끌어들여 자원펀드 크게 키워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44호 22면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은 “자원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자원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국제 분쟁의 이면에는 선진국 간의 자원 확보 목적이 개입돼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중국은 자원 확보를 국가 안보 문제와 연계해 생각한다. 그래서 수익성이 낮더라도 공격적으로 해외 자원을 사들이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정부가 국영석유회사에 막대한 재정과 외교력을 지원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영석유회사는 해외 유전 인수 경쟁에서 타사보다 높은 가격을 써내는 식이다. 실제로 올 상반기 중국 국영석유기업의 탐사ㆍ개발ㆍ생산 부문의 거래 금액은 146억 달러(약 17조5000억원)로 전 세계 거래금액의 절반을 넘어섰다.

중국 물량 공세 대처할 비책은

굴릴 수 있는 돈의 차이가 워낙 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중국 등과 자원 확보전을 벌이기 어렵다. 덩치를 키우려면 정부가 자원 개발 관련 공사에 대한 출자를 늘리거나 자원개발 펀드 자금을 조성해야 한다. 그런데 경기 부양을 위해 대규모 재정을 쏟아붓는 상황에서 출자 확대가 녹록지 않다. 그렇다면 펀드 조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 최근 지식경제부에서 석유공사ㆍ광물자원공사 등 공기업과 민간자본을 결합해 연내 5000억원 규모의 해외자원개발 펀드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펀드 조성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민간 자금을 끌어들여야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주식ㆍ채권ㆍ부동산과 더불어 자원ㆍ에너지 개발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자원 투자에 소극적이다. 현재 국내에서 순수 민간 주도의 자원개발 펀드는 6개, 40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자원 투자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자원 투자에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고 투자비가 막대하게 들어갈 뿐 아니라 투자 수익이 장기에 걸쳐 실현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투자 성과가 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1~2년의 성과에 따라 평가받는 기관투자가들이 이러한 장기성 투자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가 어렵다. 따라서 기관투자가 자금이 자원 투자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단기적인 성과 평가체계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투자위험을 축소할 수 있는 다양한 보험제도도 필요한데, 초기에는 민간 보험회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공적 기관에서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수출보험공사에 이러한 보험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지원 예산은 투자위험보증의 경우 2011년까지 500억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개인 투자자 측면에서 본다면 서부텍사스유(WTI) 같은 자원 인덱스나 세계적인 자산운용사가 투자하는 자원 펀드 등을 통해 자원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투자는 자원 그 자체의 확보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다. 결국 ‘자원 확보’라는 국가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민간 자금이 해외 자원기업 및 광구에 대한 직접 투자를 하게끔 유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사모펀드를 통해 개인들도 자원회사에 투자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대개 중소 자원회사들은 비상장이어서 이런 회사에 투자해 얻는 수익에 대해서는 중과세가 된다. 현재 조세특례제한법에 근거해 해외자원펀드에 대해 저율의 분리과세를 시행하고 있지만 2011년까지 한시적이어서 펀드투자 기간이 장기라는 점을 고려할 때 개인으로서는 투자 유인이 부족한 셈이다.

따라서 최소한 자원 펀드가 투자하는 해외 자원회사의 경우 상장이든 비상장이든 국내 주식형 펀드에 투자할 때처럼 비과세 혜택을 줘야 한다. 더불어 비상장 자원회사는 그 속성상 유동성이 떨어지므로 이런 회사에 투자한 자원 펀드는 환매에 제약이 따른다. 따라서 이러한 펀드의 유동성을 높이기 위해 이런 펀드를 손쉽게 시장에 상장해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지면 소액 투자자들도 자원펀드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정부도 자원ㆍ에너지 확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전방위 외교를 추진하는 것은 물론, 민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해외자원펀드를 준비하는 등 각종 자원 관련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다만 아직 자원 분야에 대한 투자 경험이 적고 불확실성이 높은 자원 개발의 특성상 순수 민간자본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여건을 고려할 때, 글로벌 자원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민간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과감한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산업화 초기에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할 때처럼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출자한 펀드가 손실이 난 경우 정부가 손실에 대한 부담을 먼저 지는 ‘우선손실부담(First-loss taking) 제도’ 등을 도입하는 것이 그 대안일 수 있겠다. 이미 수십 년간 자원 분야의 전문성을 쌓아온 유수의 국내 자원기업들과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대형 기관투자가들이 효과적으로 결합할 수 있도록 정부 정책이 뒷받침된다면 향후 글로벌 자원ㆍ에너지시장에서 한국이 확고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