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촌스런 사람 보면 마음 편하죠? 부시가 고어 이긴 이유랍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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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른이 넘어가면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도발적인 책보다 자신의 취향이나 신념에 맞는 책을 찾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거슬리고, 심지어 ‘과연 그럴까’싶은 책을 마냥 피하다가는 발전이 없을 겝니다. 그래서 경제학을 표방했지만 사회현상을 독특하게 설명한 책을 소개합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소문의 메커니즘을 파헤친 책도 곁들입니다.

‘미운 오리새끼’에 관대한 본능 … 완벽한 스타일엔 원초적 반감
편향성 드러내는 폭스 뉴스 팬층 만들어내며 남는 장사

 본능의 경제학
비키 쿤켈 지음,박혜원 옮김
사이, 328쪽, 1만3900원

경제학 책 아니다. 왜 소형차보다 위험한데도 SUV가 인기가 많은지, 왜 레스토랑에서 창가쪽이나 칸막이 좌석에 손님이 먼저 드는지 등을 분석하긴 한다. 그런 점에서 베스트셀러 『괴짜경제학』과 맥이 닿긴 하지만 화제는 경제를 넘어선다. 고위직으로 갈수록 평범하거나 덜 매력적인 외모의 사람들이 많은 이유, 대통령 선거토론보다 리얼리티 쇼 시청률이 더 높은 까닭 등을 파고드니 말이다.

실은 기자 출신의 사회인류학자가 쓴 사회학 책이다. 원제도 ‘즉각적 호소:대박 성공을 만드는 8가지 기본 요소(Instant Appeal: The 8 primal factors that create success)’다. 지은이는 ‘본능’을 키워드로 갖가지 정치· 경제· 사회 현상의 숨은 이유를 캐내는데 상식을 뒤집는, 그렇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대목이 수두룩하다.

2000년 12월 미국 대통령 선거 직후 부통령 관저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한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자(왼쪽)와 앨 고어 부통령. 당시 빈틈을 드러내면서도 소신을 보여준 부시의 승리로 끝났다. [AP=연합뉴스]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잘 생기고 말 잘하는 앨 고어는, 촌스럽고 말도 어눌한 조지 부시에게 졌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고어의 패배는 자신의 완벽함 탓이란다. 인간의 뇌에서 안전을 관장하는 부위는 ‘파충류의 뇌’라 불리는 가장 기초적인 부분인데 여기선 완벽하게 아름다운 사람을 마주치면 무의식 중에 불신경보를 발령한다고 한다. 때문에 고어의 완벽하다시피 한 외모와 유세 스타일은 ‘원초적 반감’을 자아냈다. 반면 부시는 선거에 승리했을 뿐 아니라 무리한 이유를 들어 이라크 전을 벌였지만 반발은 크지 않았다. “이렇게 행동과 말투가 어눌한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하지는 못할 거야”란 미국인의 집단 무의식을 파고든 덕분이었다. 지은이는 이 현상의 상당 부분은 ‘미운 오리새끼에게 마음을 놓는 관대함’이란 우리의 본능에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편안하게 느끼는 보편적 요소도 우리의 행동, 사회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그 중 하나가 ‘최소 노력의 원칙’이다. 일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능한 한 적은 노력을 들이려는 이 본능은 마케팅 분야에서 중요한 동기유발자가 된다. 생각만으로 물리적 세계에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자기계발서 『시크릿』이 좋은 예이다. 이 책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그것을 얻게 될 것이라 굳게 믿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이론을 담았다. 이는 성공으로 가는 쉽고 빠른 길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본능적 야망에 부응한 덕에 미국에서 일년 내내 베스스셀러에 올랐다는 것이다.(국내에서도 밀리언 셀러 반열에 올랐다.)

‘신성한 소’와 ‘수탕나귀’도 우리 본능을 자극하는 방아쇠 중 하나다. ‘신성한 소’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절대 꺾이지 않는 신념을, ‘수탕나귀’는 반대자들의 공격을 받더라도 자신의 ‘신성한 소’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으며 반성도 않는 사람을 뜻한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 청중 일부에게서 의도적으로 반감을 유도하는 대신 충성스러운 추종자 그룹을 만들어 성공의 요인이된다.

예컨대 극도로 보수적인 시각으로 이름난 미국의 폭스 뉴스는 신뢰도 조사에서 CBS 등 3대 방송사와 주요 일간지를 제쳤다. 지은이는 이렇게 된 데는 짜증날 만큼 완고하지만, 속시원할 정도로 직설적인 앵커들 공이 크다고 지적한다.

2006년 한 조사에 따르면 폭스 채널 기사의 68%가 사적인 견해를 담고 있다. 하지만 편향성을 공공연하게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신념에 일치하는 뉴스방송을 보고자 하는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편향성은 이익이 되는 장사다” “노련하게 적을 만들 줄 아는 자가 이긴다”고 결론 짓는다.

책에는 이밖에도 ‘내가 지금 현장에 있다고 느끼게끔 만드는 심리적 현장감’ 등 우리의 본능을 자극하는 요인과 그 사례들을 설명하는데 아쉽게도 뒷부분에 갈수록 밀도가 떨어진다. ‘직원들의 생산성을 올리려면 칸막이를 설치하라’ ‘비틀즈의 노래가 히트한 것은 멜로디보다 마약과도 같은 쾌감 반응을 일으키는 어휘를 사용한 노랫말 덕분’이라는 설명을 하면서 ‘과학적’으로 접근한 것도 한 이유다.

그래도 버스 안에서의 잡담은 견디면서도 휴대전화 통화에는 짜증을 내는 사람이 많은 이유 등을 이해하려는 보통 사람, 언뜻 승산 없어 보이는 선거에서 승리하고픈 정치인, 오프라 윈프리의 사례에서 마케팅 성공의 비밀을 캐내려는 기업인 등은 일단 한 번 들춰볼 만한 책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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