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핵용어 사용 '한국 실험'의혹 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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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실험''재처리''우라늄 농축''핵 물질 실험'….

최근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우라늄 분리 실험, 플루토늄 추출 실험에 대해 국내외 언론과 전문가 및 북한 등이 표현하는 단어들이다. 이해 관계자들이 이렇게 잘못된 용어를 가리지 않고 혼란스럽게 사용하면서 실험 내용이 실제보다 과대 포장됐으며, 이런 점이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 정부는 '우라늄 동위원소 분리 실험' '플루토늄 추출 실험'이라는 표현만을 공식적으로 써 왔다. 오준 외교통상부 국제기구정책관은 지난 3일 외신기자회견에서 "이번 실험은 연구 중 동위원소 분리 기술을 우라늄에 적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도 국내 기자들을 상대로 한 배경 설명 브리핑에서 '우라늄 분리냐, 농축이냐'를 묻는 질문에 "우라늄을 분리하면 농축이 되는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국내외 언론들은 정부의 표현법을 별로 따르지 않았다. 의도적이건 아니건 부풀렸다. 국내 모 일간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한국 '핵 실험' 비판 의장 성명 채택"이라고 썼다. 이 실험을 처음 보도한 외신은 "한국이 20여년 전에 극소량의 플루토늄 '비밀 실험'을 실시했다"고 전했다(AP 8일자). 북한은 한 술 더 떴다. 이 사건의 파문이 커지자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6일 "남조선(남한) 비밀 '핵 실험' 사건의 진상이 완전히 해명되기 전에는 우리의 핵무기 계획에 대해 논의하는 마당에 나갈 수 없다"고 공격했다.

북한이 말하는 핵 실험(nuclear test)은 핵 물질 실험(nuclear experiment)으로 바꿔야 맞다. 핵 실험은 핵무기를 개발한 뒤 그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지하나 바다 속에서 핵폭탄을 터뜨려 보는 것을 의미한다. 또 우라늄 농축 실험은 동위원소 분리 실험이라고 표현해야 적절하다. 우라늄 농축이란 원심분리법, 가스 확산법, 레이저 분리법 등의 시설을 체계적으로 갖추고 kg단위 이상으로 생산할 수 있을 때 사용한다. 미국.일본.영국 등은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기 위한 농축우라늄을 생산하는 공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원자력연구소 연구원들이 레이저방법으로 우라늄-238과 235가 섞인 재료에서 우라늄-235를 분리해 낸 것은 단순한 동위원소 분리 수준이다.

재처리란 말도 함부로 사용해선 안 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장순흥(원자핵.양자공학과)교수는 "(이번 mg단위의 플루토늄 추출 실험은) 태우고 남은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기 위한 조성 분석 실험이었다"고 말했다. 핵연료가 원자로 내에서 안정적으로 타는지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실험 방식도 납유리로 만든 글로브박스 속에서 고무장갑을 이용해 비커에 사용후 핵연료를 질산에 녹이는 수준이다. 이에 비해 kg단위의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재처리를 위해선 여러 개의 핫셀과 로봇 팔을 갖춘 시설이 필요하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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