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52년 걸린 의회 지도자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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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1층 본회의장 입구 로텐더 홀. 방문객들은 먼저 대형 석고상 2개와 마주친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상이다.

국회사무처 신입직원은 "첫 출근 때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초등학교 때부터 익숙했던 동상만 있다는 사실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고 기억했다.

15일 의사당엔 동상 2개가 새로 들어섰다. 제헌국회(1948~50년) 초대.2대 의장을 지낸 우남(雩南)이승만(李承晩)박사와 해공(海公)신익희(申翼熙)선생의 전신 청동 입상이 중앙홀 양측에 세워진 것. 우남의 동상은 홍성도 홍익대 교수가, 해공의 동상은 전준 서울대 교수가 맡았고 예산 2억원이 들어갔다.

그동안 국회의 의회지도자 기념물은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이었던 이동녕(李東寧)선생의 흉상뿐이었다.

의회지도자 동상 제막식에서 박준규 국회의장과 민관식(직무대리).정래혁.채문식.김재순.이만섭.김수한씨 등 역대의장들이 동상에 씌워진 천을 잡아당겼다. 李박사의 동상건립을 둘러싼 논란은 상당했다.

"사사오입 개헌, 3.15부정선거 등 의회주의를 파괴한 李전대통령의 동상건립은 부적절하다" 는 일부의원들과 시민단체의 반발이 심했다. 지난해 정기국회 때 동상건립에 대한 본회의 표결에서도 34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그런 우여곡절을 의식한 듯 박준규 의장은 "이분들은 건국.의회주의.외교에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고 평가한 뒤 "민주헌정사에는 단절보다 계승개혁이 요구된다" 고 의미를 부여했다.

"의회민주주의 52년 만에야 지도자 동상을 세우게 되니 머뭇거린 우리의 어리석음과 사관(史觀)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는 심정도 토로했다.

외국의 경우 의회지도자 동상은 의사당 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미국은 역대 하원의장을 비롯해 지도자 흉상을 전시하고 이들의 이름을 딴 건물까지 있다. 일본.영국도 비슷하다.

행사에 참석한 여야의원들은 "이분들의 역사적 공과(功過)와 관계없이 국회의 영속성 측면에서 동상건립의 뜻을 살려야 한다" "오늘의 정당지도자들이 역사를 두려워하는 의식으로 국회를 운영했으면 좋겠다" 고 기대했다.

김정욱 취재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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