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선→김규리, 개명의 심리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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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선’은 이것저것 추진은 많이 하지만 결실이 드문 이름이란다. 덤벙대다가 의외의 실수로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김규리’는 침착하고 신중하며 총명하다. 일찍 성공의 기틀을 마련하고 주위의 찬사를 한몸에 받는다. 입신양명할뿐더러 만인이 우러러 볼 정도의 부귀영화가 가능하다는 해설이다.

사주팔자의 숙명에 정면도전하는 것이 개명이다. 후천적 개운 수단이다. 새 호칭으로 기존의 찜찜한 구석들을 긍정적으로 돌려놓는다는 데에 이르면 합리성마저 엿보인다. 피라미드 도형이 생기를 끌어들이듯 점과 선 등 기호로 이뤄진 이름 또한 좋은 기운 혹은 탁기의 영향권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다. 선우 ‘용여’가 옳고, ‘용녀’는 오기라고 강조하는 것이 일례다.

아무나 개명을 하지는 않는다. ‘김민선’은 놀릴거리도 못된다. 그런데도 호적명까지 ‘김규리’로 교체하고야 말았다. 남 모를 각오와 의지의 표현인 듯하다. 작년 11월 김민선은 영화 ‘미인도’ 관련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색깔을 다 버리고 신윤복이란 옷을 입었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갖고 있는 모든 걸 다 버리고 또 다른 하나를 얻기 위해 비웠어요. 여고괴담2 이후 정말 내 영혼을 바쳐서 임한 10년 만의 작품이에요.”

‘미인도’는 김민선의 성가를 높였다. ‘미인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정도다. 김규리로 새 출발하겠다고 모질게 선언할 만한 이유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정신의학은 이러한 김민선에게서 영화 ‘얼굴없는 미녀’(2004) 중 김혜수를 읽는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적 캐릭터다. 김민선의 그 유명한 ‘미국산 쇠고기와 청산가리’ 발언은 경계성을 설명할 수 있는 보기다. 부적절하고 격렬한 분노, 억제하기 곤란한 충동으로 정서적 위기가 반복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자기와 자신의 이미지가 불안정하다고 느낀다. 우울증은 덤이다.

히스테리 성향도 일부 감지한다. 외모와 옷차림에 성적 매력이 있다. 유혹적, 자극적인 섹스어필이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쉽게 흥분하고 감정을 앞세운다. 김민선은 ‘낙타’라는 별명을 몹시 싫어한다. 그러다가도 TV에 나와 스스로 ‘낙타’를 언급하는 감정 기복을 나타낸다. 연극적, 외향적, 자기과시적이기도 하다. 김민선은 프로급 아마추어 사진가다.

남자가수 21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21(투애니원)이라는 명칭으로 출발하려던 여자그룹은 부랴부랴 2NE1으로 팀명을 바꿔야 했다. 한가인은 본명 김현주를 쓸 수 없었다. 한채영(본명 김지영), 아이비(〃박은혜), 이휘재(〃이영재), 김수로(〃김상중)도 선배들을 의식했다.

연령차가 크거나(윤정희 고은아 이혜영), 남녀유별하고(오현경), 무대가 다르면(이소라 김성수 김태우) 암묵적으로 동명이인을 받아들이기는 한다. 김민선과 김규리는 그러나 경우가 다르다. 79년생 동갑인 데다 일터도 같다.

무슨 오마주, 트리뷰트도 아니다. 김민선이 김규리를 그리 대할 까닭은 없다. 멀쩡히 활동 중인 김규리가 있건만, 김민선이 김규리로 이름을 갈아버렸다. 모름지기 연예계 초유의 사건이다.

김민선은 능동적 결단으로 개명을 실천했다. 동시에 심리적 약자의 모습도 드러냈다. 이름변경은 ‘네 탓이오’다. ‘내 탓이오’가 아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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