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회사 영업현장 뛰는 10명의 당찬 신입 여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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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맥주회사 여성 영업사원인 최경선(24·가운데)씨와 구자경(24오른쪽)씨가 서울 강남역 주변의 한 고깃집에서 술을 마시는 손님들에게 회사 판촉물을 나눠 주며 자사 제품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김도훈 인턴기자]

올해 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구자경(24)씨. 현재 그는 국내 H맥주회사에서 ‘술 영업’을 하고 있다. 7월 영업부문 공채에 응시해 동료 여성 9명과 함께 합격했다. 여성을 맥주 영업에 투입하는 건 이례적이다. “여성 맥주 영업사원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싶었다”는 게 지원 동기였다.

지난 1일 오전 6시, 인천 집을 출발한 구씨는 오전 8시쯤 서울 용산의 H사 지점에 도착했다. 그에겐 옷맵시도 하나의 전략이다. 회사에서 ‘운동화를 신어도 좋다’고 하지만 일반 술집의 ‘판촉 도우미’와 차별화하기 위해 정장을 고집한다. 화장은 진하지 않으면서 또렷한 인상을 줄 수 있도록 신경 쓴다.

전날 주문받은 업소별 맥주량을 체크해 보고서를 작성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구씨는 “식당에 손 세정제만 갖다 놨더니 손님들이 우리 회사 판촉물인지 모른다”며 광고물 제작 업체에 현수막을 주문했다. 판촉물도 챙겼다. 얼마 전부터 자사 맥주를 취급한 식당에 줄 앞치마·재떨이가 담긴 선물세트다.

낮 12시, 구씨를 포함해 여성 4명 등 13명으로 구성된 강남팀은 업소 방문 일정을 짰다. 어떤 판촉 활동을 벌일지 결정하는 시간이다. 영업사원에게 점심시간은 중요한 업무시간이다. 구씨는 남성 영업사원과 함께 강남역의 한 고깃집을 찾아 점심을 먹었다. 맥주도 한두 잔 마셨다. 이후 저녁 때까지 20~25곳의 업소를 돌며 판촉물을 나눠주고 업소의 요구사항을 체크했다.

저녁 때는 화로구이 집에 들러 밥을 먹으며 매출을 올려주고 가게 주인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함께 간 동료와 맥주도 1~2병 나눠 마셨다. 가게 주인 박순자(50·여)씨는 “신종 플루로 가게가 어려울 때 찾아와 위로해 주고 종업원들의 간식까지 챙기는 정성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저녁 판촉 활동이 끝난 팀원들이 강남역의 한 사무실에 모여 업무보고를 마친 뒤 헤어진 시간은 오후 9시30분. 구두를 신고 온종일 뛰어다니느라 발가락엔 굳은살이 생겼다. 그러나 구씨에게 영업직은 “몸은 고되지만 그날그날의 달콤한 성취를 만끽할 수 있는 매력적인 직업”이다.

‘금녀(禁女)의 직업’으로 알려진 맥주회사 영업직에도 여풍(女風)이 불고 있다. 맥주 영업직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야 하는 데다 이른바 접대를 많이 해야 하는 특성상 그동안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H사 10명의 여사원은 2주간의 교육을 마친 뒤 현장에 투입됐다. 젊은 손님이 많은 강남역·신촌역 일대의 2차 거래처(식당·호프집·카페 등 소매업소)의 영업관리를 맡고 있다.

구씨 등의 강남팀은 9월까지 강남역 주류업소 100곳당 20곳이던 신규 브랜드 판매 업소를 11월에는 80곳으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구씨는 “업소와 손님들 중에는 ‘여성 영업사원=판촉 도우미’라는 인식이 남아 있어 여성 사원을 사업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거나 ‘술을 따르라’며 짓궂게 구는 사람도 많다”고 털어놨다.


올해 경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입사한 최경선(24·여)씨는 “컨설팅 능력과 감성 마케팅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거래 업체의 사장이 골프를 치는 날엔 휴대전화로 ‘굿 샷하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판촉물에도 정성을 담는다. 리본으로 묶고 인사말을 적은 메모지를 붙인다.

H사 영업지원팀 정용재 차장은 “요즘 술집에 가면 주류 선택권은 여자들이 갖고 있고, 이들을 위한 저도수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며 “여성 영업사원들은 이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어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어 “1차 거래처(도매 업체)는 남성 사원이, 2차 거래처는 여성 사원에게 맡기는 것이 인력 운용면에서도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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