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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원칙도 격조도 안 보이는 광화문광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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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8월 개장한 광화문광장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는 물론 일반시민들도 도대체 광장의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의문을 쏟아낸다. 서울시는 어제 뒤늦게 “내년 2월부터 전문가·시민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세 차례 열어 광장운영 기본방향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5개월 동안 무엇 하다 이제 와서 운영 방향을 새로 모색하겠다는 것인지 딱하기만 하다.

광화문광장 개장을 맞아 우리는 광장이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휴식과 여가의 공간’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무엇보다 서울시가 공언(公言)한 ‘대한민국 대표광장’에 걸맞은 정체성과 운영 원칙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동안 광화문광장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었는가, 아니면 역사체험 학습장이었는가. 상설 이벤트 행사장이었는가, 아니면 꽃밭과 분수대 위주의 도심(都心)공원이었는가. 딱히 이도 저도 아닌 이미지가 뒤죽박죽 겹쳐지는 것은 광장 조성과 운영에 관한 원칙과 철학, 컨셉트가 서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29일 TV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장으로 광화문광장 일대를 내주었다. 모레부터는 스노보드 월드컵 대회의 ‘빅 에어’ 경기가 열릴 예정이라 거대한 경기시설물 공사가 막바지다. 해외에 수출될 인기 TV드라마이고,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중계되는 국제대회라서 홍보효과가 엄청나다는 서울시의 해명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그런 이벤트가 광화문광장의 정체성과 어떻게 부합되는지, 시민 의견은 어떤지에 대해 깊은 검토를 거쳤는지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광화문광장 내 시설물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조잡하고 어설픈 데다 무언가를 가득 채워 넣어야 한다는 강박성(强迫性) 조급증마저 엿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도심 속 휴식공간으로서의 격조와는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동상 바로 뒤에 꽃밭을 조성하면서 영어로 ‘플라워 카펫’이라고 이름 붙인 무신경은 또 무엇인가. 전체적으로 여유나 여백의 미(美)와는 거리가 멀기에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이다. 게다가 예산을 낭비할 소지가 많은 것도 문제다. 개장 두 달 동안 광장 관리비로 쓴 돈이 인건비를 합쳐 3억6700만원이나 됐다. 10월 초 플라워 카펫을 가을꽃으로 교체하는 작업에 1억2000만원이 추가로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꽃들도 다 걷어내고 며칠 후 개장할 스케이트장 조성 작업이 한창이다. 협찬금을 포함해 11억5000만원짜리 스케이트장이다. 개장 직후 발생한 교통사고 후 급히 차도와의 분리대를 설치하긴 했지만, 여전히 못 미더운 안전성과 빈약한 접근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광화문광장을 제대로 된 명품 광장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바로 착수하라. 굳이 내년 2월까지 기다려 토론회를 열 이유가 없다. 북악산에서 광화문·육조거리·숭례문으로 이어지던 조상들의 격조 높은 공간 배치 철학과 미의식부터 배워라. 검토하는 과정에 어떤 정치 논리도 스며들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