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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포커스] “이젠 건보 개혁” 오바마 휴일 잊고 밀어붙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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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워싱턴 의사당에서 민주당 상원의원들을 만나 신속한 건강보험 개혁법안 처리를 당부한 뒤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왼쪽은 맥스 보커스 상원 재무위원회 위원장. 오바마가 휴일인 일요일에 의사당을 방문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워싱턴 AP=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워싱턴 의사당을 방문, 민주당 상원의원들을 만나 건강보험 개혁법안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당부했다. 대통령이 일요일에 의사당을 방문한 건 극히 이례적이다. 건보 개혁이 오바마의 국정 어젠다의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오바마는 이달 1일 미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서 3만 명 증파를 골자로 한 아프가니스탄 전략을 밝힌 뒤 건보 개혁으로 관심을 돌렸다. 오바마의 강한 추진에 힘입어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1912년 전 국민 건보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내건 이후 한 세기 만에 건보 개혁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경쟁력 잃은 건보=오바마는 건보가 미국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며 강하게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인 1인당 연간 의료비는 7439달러(약 950만원, 2007년 기준)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의료비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5.3%로 한국(6.8%)의 두 배를 웃돈다. 이 추세대로면 2018년에는 국민소득의 20%를 의료비로 지출해야 할 처지다.

이 때문에 종업원들의 의료비 부담을 짊어진 미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고 있고, 개인은 의료비가 무서워 병원에 가길 겁낼 정도다. 이런 병폐로 미 역대 정권들은 건보 개혁을 추진했으나 의료계와 공화당 내부의 반발에 부닥쳐 무산돼 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오바마는 국민의 16%인 4800만 명이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현상을 타개하려면 개혁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정부 주도의 건보가 보편적인 한국과는 달리 민간 보험이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는 미국은 대기업이 근로자 후생 복지 차원에서 보험에 가입해 주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금융위기 등으로 실직자가 늘면 덩달아 무보험자도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보 혜택 확대=오바마와 민주당 주도로 마련된 개혁 법안의 핵심은 90% 이상의 국민에게 보험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또 비효율적인 제도를 개선, 의료비의 가파른 상승을 억제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도입한 것이 ‘공적 보험제도(퍼블릭 옵션)’다. 정부가 직접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보험사를 운영해 민간 보험사와 경쟁하고, 값싼 보험 상품을 만들어 3000만 명 이상의 무보험자를 구제하겠다는 취지다. 하원 법안은 여기에 일정 규모 이상의 중소기업들도 근로자의 보험 비용을 부담하도록 의무화하고 어길 경우 벌금을 매기도록 했다. 조그만 회사에 다니면서 도저히 보험료를 부담할 수 없던 근로자들도 보험 혜택을 받을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장밋빛 청사진을 이루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것이라는 건 불문가지다. 실제로 건보 개혁에는 향후 10년간 약 1조 달러 안팎이 소요될 전망이다. 하원 법안은 필요 재원의 절반을 고소득층에 대한 추가 세금을 통해, 나머지 절반은 기존 메디케어(노령층 건보)·메디케이드(저소득층·장애인 건보)의 효율적 운영을 통해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만만찮은 반대 목소리=6일 워싱턴DC의 상징인 워싱턴 모뉴먼트와 백악관 사이의 컨스티튜션 애비뉴에는 ‘오바마의 건강보험 개혁은 사회주의’라는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공화당과 보수주의자들은 건보 개혁이 정부의 개입을 늘려 민간의 입지를 좁힐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달 미 여론기관 라스무센 조사에선 의회에서 논의 중인 건보 개혁 법안에 대한 반대가 56%로 찬성 38%를 크게 앞섰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추가 세금 부담을 두려워하는 중산층 이상 보험 가입자들의 우려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미국인 사이에선 돈을 쏟아 부어도 의료 비용을 줄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구심도 많다. 지난 1월 공화당 소속이면서 오바마의 경기부양법안에 찬성했던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도 정부의 재정적자 확대와 민간보험회사 도산을 우려하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콜린스 의원 측은 최근 본지에 보낸 e-메일에서 “민주당 법안은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의 부담을 늘려 경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며, 민간보험 시장의 붕괴로 인해 미국인들은 더 많은 돈을 내면서 열악한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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