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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패스트 15 좌담회] 우수 인력들 부모 반대로 ‘대기업행 고집’ 안타까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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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중앙일보와 딜로이트가 공동기획한 ‘이노패스트 15’ 기획 시리즈의 결산 좌담회가 4일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이재일 딜로이트 성장혁신센터장,박용석 DMS 사장, 조정일 케이비테크놀러지 사장, 이재원 슈프리마 사장, 김철영 미래나노텍 사장, 남윤호 중앙일보 금융증권 데스크. [조문규 기자]

혁신과 성장. 중앙일보와 딜로이트가 공동 선정한 15개 이노패스트 기업의 특징이다. 본지는 3주간에 걸쳐 이들의 창업과 성장, 좌절과 성공의 스토리를 조명해왔다. 이번 기획은 단순한 기업 소개에 그치지 않고 최고경영자(CEO)의 경영철학과 고민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이에 대해 딜로이트가 지면 컨설팅을 해주는 식으로 구성됐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지난 3일 이노패스트 기업 CEO 가운데 4명을 초청해 좌담회를 열었다. 이들은 인재 발굴의 어려움, 정부에 대한 정책 건의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다.

▶남윤호 금융증권 데스크=취재 과정에서 남다른 성공 스토리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성공의 비결, 위기 극복 과정 등 후배 기업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많을 것 같다.

▶박용석 DMS 사장=처음부터 해외시장을 겨냥했지만 기업 인지도가 낮아 어려움이 컸다. 뜻밖에도 2003년 전 세계를 강타한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우리에겐 기회가 됐다. 사스로 일본·한국의 경쟁사들이 철수할 때 우리는 오히려 시장을 공략하는 역발상 전략을 택했다. 이후엔 대기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고객을 다각화한 전략도 주효했다.

▶김철영 미래나노텍 사장=제품 개발 단계에선 기업하는 게 즐거웠다. 오히려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고 본격적인 성장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큰 어려움을 겪었다. 원자재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매출과 수익성이 급격히 나빠진 것이다. 회사가 망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돌이켜보니 원가라는 개념조차 없이 사업하는 등 내부 관리에 문제가 많았다. 내부 요인을 체계적으로 정비해 나가기 시작한 지 1년여가 지나면서 서서히 고객 신뢰를 회복했고,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재원 슈프리마 사장=제품을 개발했지만 국내에선 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앞서 나온 지문인식 제품이 엉망이어서 우리도 도매금으로 취급됐다. 어쩔 수 없이 해외시장을 공략할 수밖에 없었고, 어려움도 컸지만 결국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연구소장을 맡던 임원이 마케팅을 하는 등 새로운 시도도 많이 했다.

▶조정일 케이비테크놀러지 사장=교통카드 사업으로 코스닥시장에 상장도 했지만 오래 지속할 사업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결국 2005년 스마트카드의 운영체제(OS) 분야로 업종을 전환했다. 그 과정에서 은행의 자금 회수, 인력 구조조정 등 경영자로서 겪은 고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다행히도 인프라에 많이 투자해 현금성 자산을 200억원가량 확보해둔 게 사업 전환에 큰 도움이 됐다. 엉뚱한 데 투자해 현금 여유가 많지 않은 기업이라면 사업 전환은커녕 고스란히 회사를 접을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이재일 딜로이트 성장혁신센터장=회사마다 성공에 이른 경영비법이 있을 것 같은데.

▶박용석=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원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이다. 체질을 바꾸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직원들의 환경을 의도적으로 바꿔줄 필요가 있다. 환경이 바뀌어야 창의적 사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종종 순환보직을 통해 환경을 바꾸려 노력한다.

▶조정일=직원들이 본질적인 문제점엔 공감하면서도 해결 방안을 제시하면 태도가 180도 바뀌곤 한다. 해결 방안을 실행하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가 드러나고 불편해지는 게 싫은 것 같다. 그걸 설득하고 이끌고 나가는 게 힘들었다.

▶김철영=경영에서 제일 힘든 것은 여러 가지 요소를 적절하게 조화하는 일이다. 인사·재무·조달·기술 등이 한 곳에 모이면서 강력한 힘이 발생하는 법이다. 이런 조화를 위해 신규 인력을 채용할 때에도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을 선발한다.

▶이재일=성장 과정에서 갈등도 많았을 것 같다. 과거 100억원 매출일 때 뽑았던 사람이 500억원대 매출에서는 제대로 일을 못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김철영=10명을 데리고 일할 때는 잘 하던 사람이, 100명이 일하는 기업이 되면 능력을 발휘 못하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는 못하면서 남들도 못하게 길을 막는다는 것이다.

▶조정일=창업 멤버 15명 중에서 지금은 두 명밖에 안 남았다. ‘같이 변하자’고 했는데 쉽지가 않더라.

▶남윤호=중소기업들이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노패스트 기업도 마찬가지인가.

▶조정일=인력 채용하기가 너무 힘들다. 아예 단념하고 해외사업 분야에선 현지 우수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우수한 젊은 인력을 채용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부모님의 의식이다. 본인이 좋다고 해도 부모님의 고집 때문에 결국은 대기업행을 택하고 마는 경우를 많이 봤다. 대기업 수준으로 급여를 지급해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다.

▶이재원=선발한 인력을 조직과 융합시키는 것도 숙제다. 우리는 나름대로 독특한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회사가 원하는 대로 바뀔 수 없기에 개인적인 부분과 조직적인 것을 조화시키려 많이 노력한다.

▶남윤호=정부가 벤처기업 육성 방안을 내놨다. 규제 완화 등 정부에 건의하고 싶은 게 있다면.

▶조정일=만약 인터넷 사업이 면허제였으면 NHN·다음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창의적으로 도전한 기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이란 무한경쟁의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 규제로 묶인 분야가 많다. 진입 장벽이 여전한 휴대전화 데이터 통신이 좋은 사례다. 규제가 있으면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은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규제로 인해 게임의 규칙이 왜곡되는 것이다. 공공기업 정보기술(IT) 프로젝트의 경우 규모가 20억원만 넘어도 중소기업엔 안 주는 것도 공정하지 못하다. 돈을 나눠주는 정책보다는 창의적 도전이 가능하도록 공정한 게임 규칙을 만드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박용석=어차피 기업은 좋은 제품을 싸게 팔아 많은 이익을 남기는 조직이다. 그러려면 굳이 한국에서 창업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규제가 많다고 불평할 게 아니라 아예 규제가 적은 다른 나라에서 창업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조금만 도와주면 성장할 수 있는데 그게 잘 안 되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조정일=창업지원자금 등 우리나라엔 창업과 관련한 좋은 제도가 많다. 그러나 창업 이후 10년, 20년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사업을 일궈가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성장정책을 좀 더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김철영=이명박 대통령이 ‘벤처 2기’를 선언하고, 벤처기업에 성장동력을 다시 심어주겠다는 것은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난 정부의 벤처정책은 후퇴했다. 그런 부작용 때문에 벤처창업도 줄어든 것이다. 새로운 벤처기업이 많이 생겨나도록 꿈을 갖게끔 해주는 게 중요하다. 다만 시작은 잘했는데 그걸 살리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나는 벤처기업을 많이 봤다. 성장 단계에서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정책이 뒷받침된다면 한국의 벤처산업은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이다.

▶이재일=딜로이트가 세계적인 성장기업을 선정하는 ‘글로벌 패스트 500’이란 게 있다. 예전엔 한국 기업들이 상위권에 많이 올랐지만 지금은 중국·인도 기업이 더 많다. 정부는 창업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성장 단계에 있는 기업에 힘을 실어줘야만 벤처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박용석=일정 단계에 오른 벤처기업들이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고, 이를 지원해주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우리 같은 기업들은 누구보다 그런 아이템을 발굴하는 데 전문가 아니겠는가. 다만 그런 여력이 크지 않다는 게 아쉽다.

특별취재팀=금융증권팀 김준현 차장, 김원배·김영훈·조민근·박현영·한애란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지면에 소개된 15개 기업

[1] 네오세미테크

오명환(50) 사장이 2000년 설립했다. LED용과 태양전지용 반도체 잉곳(덩어리)을 모두 생산하는 회사는 전 세계에서 네오세미테크가 유일하다. ‘연속공정법’이란 독창적 기술로 경쟁사보다 생산단가를 30~60%가량 낮췄다. 그린 열풍이 불수록 휘파람을 부는 회사다. 2009년 11월 16일 E8~9면

[2] 학산

신발은 사양산업이다? 아니다. 적어도 이원목(58) 사장에게 신발은 신성장 산업이다. 레드오션으로 취급되는 신발 시장에서 지난해 42%의 매출 성장률을 보인 게 이를 증명한다. 세계적 브랜드 틈새를 비집고 배드민턴·테니스화 부문 세계 일류 제품을 만든 까닭이다. 2009년 11월 17일 E14면

[3] KH바텍

남광희(50) 사장이 설립한 휴대전화 부품업체로 2003년 한국의 유망 성장기업으로 월스트리트 저널(WSJ)에도 소개되기도 했다. 특정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 때문에 침체를 경험했지만 휴대전화 세계 1위인 핀란드 노키아에 부품을 공급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2009년 11월 18일 E11면

[4] 슈프리마

이재원(41) 사장이 2000년 설립했다. 출입 통제, 신분 확인에 쓰이는 지문인식 시스템 시장에서 국내 점유율 58%다. 지문인식 모듈(부품)은 세계 판매량 1위다. 공학도 출신인 창업자들의 기술력과 기술경연대회 2연패 같은 마케팅이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다. 2009년 11월 19일 E11면

[5] 정우금속공업

이광원(60) 회장의 정우금속공업은 동관의 방향을 바꿔주고, 길이를 연장하는 이음쇠가 주력 제품이다. 전형적인 굴뚝산업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겠거니, 하면 곤란하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주무기로, 국내시장 점유율만 60% 달한다. 세계시장에서도 4위를 달리는 혁신기업이다. 2009년 11월 20일 E7면

[6] 화우테크놀러지

공작기계 제조업체를 운영하던 유영호(50) 사장은 2000년 LED 조명 사업자로 변신했다. 미래엔 친환경이 신산업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예견하고 LED조명을 주력으로 사업을 재편한 것이다. LED조명과 이산화탄소 배출권 사업을 연계한 사업도 준비 중이다. 2009년 11월 23일 E11면

[7] 에이스테크놀로지

구관영(62) 회장은 1980년 안테나 수입업체로 사업을 시작했다. 90년대 말까지 승승장구했지만 권태를 느낀 구 회장이 잠깐 주춤하는 사이 회사도 정체됐다. 이제 재도약을 준비 중이다. 내년엔 인도 공장도 돌아가기 시작한다. 2009년 11월 24일 E11면

[8] 코콤

고성욱(60) 사장이 1976년 설립한 회사로 87년 출시한 비디오 도어폰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1세대 벤처기업의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90년대 말엔 홈네트워크 시장에도 진출해 성공을 맛봤다. 이젠 LED 조명과 지능형 전력망 시스템으로 제2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2009년 11월 25일 E11면

[9] 아이엠

손을재(59) 사장이 이끌고 있는 회사로 2006년 삼성전기에서 분사했다. 음성·화상·데이터를 재생하는 장치인 광픽업 분야에서 세계 1위의 생산업체다. 이 분야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LED조명·의료기기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며 매출 1조원 클럽을 꿈꾸고 있다. 2009년 11월 26일 E11면

[10] 에스에너지

홍성민(49) 사장이 설립한 태양광발전 전문 기업이다. 1992년 삼성전자 내 사업부에서 시작해 2001년 분사한 뒤 빠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시작한 수출이 급속도로 늘며 올해도 40%에 가까운 매출 성장률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다.

2009년 11월 27일 E11면

[11] DMS

박용석(51) 사장이 1999년 설립한 회사로 고집적 세정장비(HCD)의 경우 2005년 이후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바닥면적을 기존 장비의 3분의 1로 줄이는 등 혁신이 비결이다. 최근 반도체 장비시장에도 진출해 세계적인 장비업체로 발돋움했다. 2009년 11월 30일 E11면

[12] 미래나노텍

김철영(45) 사장이 2002년 설립했다. 가격을 낮춘 LCD 패널용 프리즘 필름을 개발해 글로벌 기업 3M의 독점을 깼다. 올해 세계 시장 점유율 2위에 올랐다. 시장 변화에 맞춰 터치 패널용 소재와 교통표지판용 ‘재귀반사 필름’ 등으로 제품을 다양화하고 있다. 2009년 12월 1일 E11면

[13] 케이비테크놀러지

조정일(47) 사장이 1998년 교통카드 업체로 창업했다. 그러나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쳐 2005년 스마트카드 운영체제(OS) 업체로 재탄생했다. 3년 만에 국내시장 점유율 1위. 신용카드 10장 중 7장에 이 회사 기술이 담겼다. 2009년 12월 2일 E11면

[14] 동국S&C

시작은 초라했다. 동국산업에서 분사한 동국S&C의 직원은 고작 16명. 풍력발전용 윈드타워가 뭔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제 윈드타워 부문에서 동국S&C는 세계 ‘넘버 원’이 됐다. 정학근(59) 사장의 리더십이 빛을 발한 덕분이다. 2009년 12월 3일 E11면

[15] 아바코

성득기(55) 사장이 이끌고 있는 회사로 액정표시장치(LCD)를 생산하는 핵심 장비인 스퍼터를 처음으로 국산화했다. 2007년 매출이 급감했지만 구조조정으로 이를 극복했다. 최근엔 박막형 태양전지용 스퍼터를 개발해 수출까지 했다. 2009년 12월 4일 E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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