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살리는 환경] 4.생태계복원 인간이 주도해야 하나-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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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살구가 노랗게 익어 가만히 두면, 저절로 땅에 떨어져서 흙에 묻혀 썩고, 그러면 거기 어린 살구나무가 또 태어나지, 그 살구나무가 해와 바람과 물과 세상의 도움으로 자라서, 또 살구가 열린단다. 가만히 생각하면 다 지구의 일이야,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람이 지구의 일을 방해하면 안돼."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지구의 일' 이란 시에서 발췌한 글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람이 지구의 일을 방해하면 안된다는 시인의 시적 감성에 환경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필자도 동의한다.

최근 발생한 강원도 산불 현장의 생태학적 복구를 놓고 얘기를 한번 해보자. 인위적 복원방법인 조림이 그 지역의 자연식생을 훼손하는 등 오히려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는 논의도 있고 물론 그 반대의 의견도 있다.

강원대 정연숙 교수는 "강원지역은 원래 소나무에서 활엽수로 천이하는 단계인데 그동안 인위적으로 소나무를 심어 생태계를 교란해 왔다" 면서 자연이 스스로 복원하도록 인위적 복원사업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충북대 강상준 교수 역시 "자연복원하면 20여년 만에 숲이 살아날 수 있고, 수종도 불에 강한 활엽수림으로 바뀌어 산불피해를 줄일 수 있다" 고 주장하면서, 1996년에 발생한 고성 산불 지역의 인위적 복원사업을 실패 사례로 들고 있다.

그 당시 인공조림을 위해 작업도로를 만들고 불탄 나무를 자른 뒤 옮기는 과정에서 토양 표층이 손상되는 등 여러가지 이유로, 결국은 나무가 활착하기 어려운 마사토만 남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인공조림이 생태학적 복구에 더 낫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조림 수종으로 초기 생장이 빠른 소나무와 함께 불에 잘 견디는 활엽수를 섞어 심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그것이다.

사실 지금 상태에서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인위적 복원이 자연적 복원보다 명확하게 더 좋은 방법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어설프게 손대는 것보다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황소개구리나 미국자리공 등 외래동식물의 무조건적 제거에 나는 반대한 적이 있다.

현상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없고, 따라서 우리 고유 생태계의 지속적 보전이라는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의 인위적 제거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생명을 살리자는 환경운동이 죽임을 전제로 한 것이 돼서는 곤란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 땅에서 자취를 감춘 호랑이.늑대.산양, 그리고 반달가슴곰 등의 인위적 번식과 생태계 방사에도 반대한다.

그건 이미 '자연' 이 아니지 않은가.

가령 백두산 호랑이를 인공복제해 풀어놓는다면 그것을 두고 생태계의 복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차피 생태계는 진화와 천이의 과정을 거치게 돼 있고 또한 자연은 '스스로 짜짓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자연을 그대로 닮은 인위적 복원이 가능하다면 또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자연 스스로의 복원능력을 믿어 보자. 인간 마음대로 환경을 파괴해 놓고 이제 와서 인위적 복원 운운하는 것이 병 주고 약 주는 일이라면 그나마 다행인데, 병 주고 또 병 줄까봐 겁이 난다.

아무려면 자연이 사람만 못하겠는가.

장 원(대전대 환경공학과 교수.녹색연합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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