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을 말한다] '매그놀리아' 감독 앤더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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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최근 혜성처럼 나타난 신예감독으로 영국에 샘 멘데스가 있다면 미국엔 폴 토머스 앤더슨이 있다.

그는 잔잔한 가족이야기로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그가 인터넷과 언론매체 등에 밝힌 작품이야기를 1인칭으로 정리했다.

'매그놀리아' 를 본 관객 중 나의 팬이라면 '왜 또 저 배우들을 캐스팅했을까' 라고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필립 베이커 홀.필립 시머 호프먼.존 C 라일리.멜로라 월터스는 나의 작품 3편 모두에 출연한 배우들이다.

이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에게 그들의 존재는 어느 정도 작품성을 보장해주는 '안전망' 이 된다.

그들은 나를 '천재' 라 불러 칭찬하고, 나는 그들을 믿기 때문에 시너지효과가 대단하다.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머리 속에는 그들의 연기로 꽉 차게 된다.

나는 혈연이 전혀 닿지 않는 사람끼리도 가족 같은 끈끈한 관계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가족' 은 나의 작품을 이해하는 키워드다.

지금까지 발표한 세 작품 모두 가족을 이야기했다.

'하드 에이트' 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부기 나이츠' 는 '인위적' 으로 가족관계를 맺은 포르노업자들간의 사랑을 그렸다.

상영시간이 3시간8분이나 되는 지루한 '매그놀리아' 역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여러 가정에서 하루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담았다.

그 중에는 서로 연이 닿는 가족도 있다. 이들 작품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친구는 선택할 수 있어도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 는 엄연한 사실이다.

누구나 뻔히 아는 말인데도 그 말에 담긴 깊은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영화인들이 거창한 주제로 명작을 만들겠다고 안달을 부리지만 진실은 늘 작은 것에 있다.

다음에는 다른 주제를 택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전쟁 혹은 공상과학을 택한다 해도 결국은 가족문제로 귀착될 것이다.

가족의 중요성에 비하면 아무리 많은 영화가 쏟아져도 부족하다고 나는 믿는다.

영화 속 인물들의 이름에 꽃 이름이 많다는 사실에 힌트를 얻은 관객이 있을지 모르겠다.

극중 여자의 이름에 로즈와 릴리를 넣은 것은 가슴이 따뜻하면서도 강인한 여성상을 강조하고 싶어서였다.

가족을 훈훈하게 가꾸는 쪽은 아무래도 여성이지 않을까. 개구리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마지막 장면에 특별히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그저 재미있을 것 같아서 넣었는데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하는 것으로 봐서 엉뚱하게 관객들이 깊은 인상을 받은 것 같다.

솔직히 지난번 아카데미상에서 욕심을 부렸다. 영화인으로서 그 상에 무관심하다면 진실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집에는 영화관련 기념물이 가득한데 오스카 트로피까지 가세한다면 품격이 높아지지 않을까.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점은 내 영화가 미국보다 캐나다에서 더 인기가 높다는 사실이다.

캐나다인들은 이것 저것 분석하며 영화에 몰입하는 반면 미국인들은 당장의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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