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경제다] 3. 추가 공적자금은 '빨리 충분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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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물도 없이 불을 끄라는 격입니다."

2단계 금융개혁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부 실무자들은 사견임을 전제로 공적자금 추가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가 그동안 공적자금 추가조성이 필요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바람에 막상 2단계 금융개혁을 앞두고 가장 절실히 필요해진 공적자금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격이 돼버렸다.

◇ 민간은 30조~40조원, 정부는 '필요없다' 〓대우경제연구소는 지난 9일 앞으로 30조~40조원의 공적자금이 추가로 투입돼야한다고 전망했다.

이에대해 이헌재(李憲宰)재경부장관이나 이용근(李容根)금융감독위원장은 '추가조성없이 투입된 자금을 회수해 재사용하는 방식을 쓰면 64조원으로 충분하다' 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64조원중 지금까지 자산관리공사.예금보험공사의 회수분 15조원은 이미 대우채 매입 등에 사용됐거나 쓸 곳이 정해진 상태다.

자산관리공사의 남은 부실채권 매각은 시간이 걸리고, 예보공사의 한빛.조흥.외환은행 등 출자분은 주식값이 바닥이라 시장에서 팔아 회수하기가 당분간 어렵다.

결국 쓸 곳은 줄줄이 생기는데 회수는 그때그때 이뤄지지 않는다는게 문제다.

당장 오는 22일로 다가온 영업정지중인 나라종금의 예금대지급 3조4천억원도 기금이 바닥나 못내줄 판국이다.

'회수해서 쓴다' 는 정부 해법은 재원이 충분치도 않거니와 '시간차이' 때문에 빗나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 돈이 없으니 '자율' 강조〓공적자금 추가조성을 빨리, 많이 할 수록 정부의 신속하고 주도적인 구조조정이 가능하다.

치료약이 있는 의사만이 환자에게 고통을 참으라고 주문할 수 있는 이치다.

반면 실탄(자금) 지원없이 은행 등을 '합병의 전쟁터' 로 몰아넣으려면 인력.조직 감축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조정은 늦어질 수 밖에 없다.

이헌재장관 등 경제부처 수장들이 총선직전 잇따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총선직후 급격한 금융구조조정은 없다" 고 말한 배경에는 자금 추가조성을 둘러싼 정부의 고민이 담겨있다.

시장자율에 맡기면 하반기 이후에나 은행합병 등이 시작될 것이고 그럴 경우, 이미 투입된 기금을 회수할 때까지 시간을 벌수 있어 공적자금 추가조성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대신 정부는 금융지주회사법을 5월 임시국회에 올려 시장자율에 의한 합병을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우선 국영화한 금융기관들을 금융지주회사로 통합한 뒤 업무영역별로 합병 또는 정리하는 방식으로 '모범답안' 을 실행, 시장에 자극을 준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정도 처방으로 '감원 불가' 를 외치는 노조 등의 강력한 반발을 무마하면서 2차 금융개혁을 이뤄낼 수 있다고 믿는 전문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 정면돌파 나서야〓야당인 한나라당 이한구(李漢久)선대위 정책위원장은 "총선내내 금융부실 청소를 위해 공적자금 추가조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했다" 면서 "정부가 요청해오면 필요성을 면밀히 따진 뒤 동의해줄 수 있다는게 당의 입장" 이라고 말했다.

한국회계연구원 김일섭 원장은 "1998년 1차때 대우사태 등을 계산에 넣지않고 충분히 부실을 청소해주지 않아 또다시 금융 구조조정이 필요해진 것" 이라며 "공적자금은 추가로 40조원이상 충분히 조성하되, 정부가 책임을 지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곳에 투입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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