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누른 종로 정인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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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거물 정치인이라는 미명 아래 지역구 발전을 외면한 데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에서 3전4기에 성공한 정인봉(鄭寅鳳.47.한나라당)당선자는 "종로가 지난 20년 동안 지역구 의원으로부터 푸대접을 받았다" 며 "언제나 봉사하는 자세로 지역구민과 국민의 아픔을 덜어주겠다" 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13일 저녁 지구당 사무실서 TV를 통해 민주당 이종찬(李鍾贊)후보를 줄곧 앞서고 있다는 개표 방송을 지켜보면서 그의 얼굴은 상기됐고 '이젠 해냈다' 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당선이 확정됐을 때엔 지지자들과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초반 열세를 극복하고 무명 정치인으로서 거물 4선의원을 꺾고 '오뚝이' 로 거듭난 비결에 대해 "선거운동 과정에서 좀더 참신한 인물로 바꿔보겠다는 밑바닥 정서를 확인했다" 며 "특히 경쟁후보가 시민단체로부터 낙선대상자로 지목된 게 도움이 됐다" 고 말했다.

그의 금배지에는 갖은 고생이 담겨있다.

1988년 국회의원 선거에 처녀 출마한 뒤 지금껏 세차례 패배의 쓴 잔을 마셨다.

선거때마다 "또 출마하느냐" "의원직에 한(恨)이 맺혔느냐" 는 등 각종 비아냥이 귓전을 때렸다.

아내는 "고생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며 "좀더 편하게 살 수 있는 데 왜'' 힘든 길을 가느냐" 고 울먹거리며 출마를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변호사라는 경력을 십분 발휘, 봉사활동과 무료 법률상담을 통해 서민들의 아픔을 덜어줬다.

89년에는 중학교 의무교육운동을 시작했고, 이듬해부터 매주 이틀동안 무료법률상담을 벌인 이후로 지금껏 3만여명이 그의 법률사무소를 다녀갔다.

또 헌혈운동.무료도서관 운영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기탁금제도, 한.일어업협정 등에 대한 헌법소원 등 그의 활동은 잠시도 끊이지 않았다.

정치에 뜻을 둔 이후로 지역구에서 돈이 없어 대학을 못가는 수많은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교육문제의 심각성을 알았습니다.

국회에 꼭 진출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위한 입법활동을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교육문제에 대한 관심은 고등학교 2학년 재학중 집안형편이 어려워 과외로 학비를 마련해야 했던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어린 시절 '이 다음에 크면 꼭 남을 돕는 사람이 돼야지' 라고 다짐했다" 고 밝혔다.

그는 현재 방송통신대 불어불문과 4학년생이다.

젊은이들의 생각을 이해하겠다는 의욕과 어학에 대한 관심이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를 캠퍼스로 이끌었다.

그는 부인 박향숙(44)씨와 사이에 아들(20)과 딸(17)을 두고 있다.

"앞으로 4년을 '머슴' 처럼 일해 다음 선거에선 보다 떳떳한 모습으로 구민과 국민 앞에 서겠습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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