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파업 대체 근무, 대학생이 왜 나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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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도대학 캠퍼스에 우뚝 선 쌍두철마상

“열차의 원활한 운행을 위해 한국철도대학생 150명을 지원받아 운전인력(기관사, 차장)으로 투입하겠다”

철도파업 4일째로 장기화 조짐을 보이던 지난달 29일 국토해양부는 철도대학 재학생을 긴급 대체 인력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철도대학생들은 이미 파업 첫날부터 53명이 투입돼 수도권 구간 전동차 차장요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국토해양부, 철도공사는 철도공사 노조가 파업 기미를 보이자 대체 인력으로 근무할 인원 지원을 미리 한국철도대학에 요청했다. 이에 대학 측은 총장 주재로 긴급 교수회의를 열었다. 지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2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어 시기가 좋지 않았지만 교수들은 논란 끝에 “지원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파업 첫날 철도운전기전과 2, 3학년 53명을 차장요원으로 파견했다. 철도파업에 대한 입장은 교수들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파업으로 시민들이 불편을 겪으면 철도에 대한 인식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번 대체 인력 지원의 실무 총책을 맡은 전영석 학생지원처장(철도운전기전과 교수)은 “학생들이 현장에서 실습할 수 좋은 기회라는 측면도 고려됐지만 무엇보다도 파업기간 중에도 열차는 안전하게 운행되어야 한다는 철도인의 소명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1968년 철도와 인연을 맺어 2004년 당시 철도청(현 철도공사) 고속철도안전과장으로 4월 KTX(고속철도) 개통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철도공사로 바뀐 후 조사처장을 역임한 그는 철도대학 교수로 채용돼 전문 철도인을 양성하고 있다. 30년 이상 철도 현장을 지켰던 전 교수는 “자동차가 급속히 늘고 고속도로망이 확장되면서 철도가 국민들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이제 철도가 대중교통 수단으로 서민들의 가장 소중한 발로 거듭나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철도파업이 길어지면서 대체 인력이 피로감을 느끼자 정부와 공사는 또 다시 인력지원 요청을 했다. 이번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였다. 하지만 대부분 학과가 3년제인 철도대학의 한 학년 학생 수는 220여명으로 이중 1학년과 이미 취업을 한 3학년 학생을 제외하고 또 운전인력으로 나갈 수 없는 학생을 빼면 대상자는 200명 가량이다.

이에 철도대학 감독부서인 국토해양부는 “철도대학 정원이 그것 밖에 안 되느냐”며 놀랐다고 한다. 2차 지원 인력은 150명으로 정해졌다. 학교 측은 이번에는 자원을 받았다. 지원자는 대상자보다 많은 250명 가까이 됐다. 학교 측은 내부 심사를 거쳐 154명을 뽑아 안전에 꼭 필요한 교육을 시킨 후 지난달 30일 오후 철도공사로 보냈다. 철도파업 7일째인 2일 현재 대체 인력으로 근무 중인 철도대학생들은 총 207명이다.

1905년 경부선 개통 직후 '철도이원(공무원)양성소'로 출발한 철도대학은 현재 통폐합 문제로 시련을 겪고 있다. 2005년 철도청이 공사로 전환한 후 철도대학은 국토해양부가 예산 지원과 감독을 맡고 있다. 정부는 관리의 어려움을 들어 철도대학을 다른 대학에 통폐합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 사립대에 통합하는 논의가 있었지만 격렬됐다. '철도대학'의 위상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이 대학 최연혜 총장은 지난 10월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열린 유라시아국립철도대학교 포럼에서 세계철도대학교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해외에서 한국철도대학의 위상을 확인한 것이다. 최 총장은 "한국의 철도기술 수준은 세계 4번째로 고속철 자체 생산 기술을 보유할 정도로 상위권"이라며 "이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철도 전문인력 양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3년제인 철도대학을 외국의 철도대학과 같이 4년제로 승격시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철도 르네상스는 철도 전문인력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게 최 총장의 지론이다.

노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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