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무엇을 좇다가 전과자 되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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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주의는 '데모크라시(Democracy)' 의 역어(譯語)다. 참으로 절묘한 역어다 싶다. 그러니까 '데모스' (시민)가 '크라티아' (권력)의 주체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정치체제라는 것이다.

시민운동단체가 '법을 어겨서라도' 국회의원들의 버릇을 바로잡겠다고 나섰을 때, 불완전한 선거법의 개선을 요구했을 때, 한 국회의원은 "너희들이 뭔데 국회의원들의 입법권을 두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느냐" 고 호통치는 걸 보았다.

그 사람 뭘 몰랐던 모양인데, '너희들' 이 무엇인지 내가 대답하겠다. 너희들은 바로 데모스다. 데모스의 패거리다.

"이대로는 안된다, 안된다" 하면서도 여러가지 이유에서 국회의원들에게 삿대질 못하는 사람들을 대표해 삿대질을 해댄 용기있는 패거리다. 데모스, 즉 '시민의 연대' 다.

이제 데모스로서 내가 묻겠다. 그 입법권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국민의 참정권에서 나왔다. 참정권은 그러면 무엇인가? '데모스의 크라티아' , 백성의 힘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최상위 개념은 너희들의 힘, 즉 백성의 힘이다. 입법권을 가졌다고 까불 일이 아니다.

자, 후보 합동연설회장에서 어디 한 번 "너희들이 뭔데 입법권 놓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느냐" 고 호통 쳐보시지 그래.

'법의 테두리 안에서…' .좋은 말이다. 나는 운전경력 30년에 도로교통법 한 번 어겨본 적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자랑스러운 사람이 아니다. 도로교통법 자체를 시비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도로교통법에 관한 한 나는 '크라티아(힘)' 의 주체가 아닌, 노예와 다름없는 존재다. 나는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존재라 노예의 힘을 규합해 로마 제국에 저항한 스파르타쿠스를 사랑한다.

역사를 보라. 역사는 이설(異說)없이(그것은 쿠데타일 수도 있다) 진보한 예를 별로 기록하고 있지 않다. 이설을 부르짖다 십자가에 못박힌 분 얘기까지 꺼낼 것도 없다. 도로교통법에 관한 한 나같은 사람은 버러지와 다를 바 없다.

입법권을 얻기 위해 데모스의 참정권 앞에 고개를 조아리는 국회의원 후보의 상당수가 전과자라 한다. 법 테두리 안에 머물지 않고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국가를 때린 자들' 이란 말이다.

법을 어겨보지 못한 나는 국가를 때린 경력이 있는, 힘 있는 데모스들을 대체로 존경한다. 그러나 다 존경하는 것은 아니고, 무엇을 좇느라고 국가를 때렸는지 한번 따져본다. 이 자는 큰것(大體)을 좇았는가, 작은 것(小體)을 좇았는가. 전자는 대인이고 후자는 소인이다.

"이게 민주주의냐" 면서 나섰다가 국가가 그러면 안 된다면서 때리니까 그 주먹 맞받아 친 분들도 있고, 세금 떼어먹으려고 세법 핼금거린 자들도 있고, 군대 싫다고 군대보다 더 험한 고생 사서 한 가엾은 녀석들도 있고, 안되는 일 되게 하느라고 뒷손질로 돈질하고도 정치라는 게 그런 거 아니냐고 우기는 자식들도 있고, 심지어는 남의 아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실정법 울타리를 타넘은 것으로 사료되는 놈들도 있다.

이제 우리 데모스는 입법권을 얻으려는 사람들에게 요구하자. "왜 국가를 때렸는지 말해보라. 네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알 수 있도록. "

잡초를 없이 하되 뿌리까지 없이 하지 않으면 봄바람에 또 들고 일어나느니(斬草不除根春風聚又生)…. 4월 13일, 나는 괭이를 둘러메고 나서련다.

이윤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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