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후보들의 전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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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과사실을 감추고 마들레느라 이름을 바꾼 장발장이 시장(市長)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증오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바꾼 결과였다.

굶주리는 어린 조카들을 위해 빵 한조각을 훔치려다 체포돼 19년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출옥한 그에게 남은 것은 실의와 좌절뿐이었다.

극진하게 보살펴주는 미리엘 신부를 배신하고 은식기를 훔쳐 달아나다 또다시 경찰에 체포됐을 때 자신이 준 것이라며 은촛대까지 얹어준 신부에게서 진정한 인간애를 발견한 것이다.

장발장의 회개와 갱생은 그의 과거에 의심을 품은 자베르 경감이 진짜 장발장을 체포했다며 용서를 빌었을 때 '내가 진짜 장발장' 이라 고백하는 대목에서 참모습을 보여준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죄와 벌의 인과관계에 대한 극사실적인 조명이다.

빵 한조각을 훔친 것도 범죄행위임엔 틀림없지만 그런 사소한 범죄에 5년형이 인도됐다면 그것은 분명 사회의 잘못이다. 그래서 복역 중 다섯차례에 걸친 장발장의 탈옥 시도도 그에게는 변명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고,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죄를 짓는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대가를 치른 후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있다.

장발장처럼 죄의 대가를 치른 후 증오를 사랑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것은 전화위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형행제도는 범법자들의 회개와 교정(矯正)만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또다른 죄와 비행을 만들어내는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초범이냐, 재범이냐가 중요한 까닭도 거기에 있다. 물론 전과자에 대한 사회의 냉대와 질시가 이들로 하여금 새삶을 찾는 데 장애가 되기는 하지만 어쩌다 잘못을 저지르고 죄값을 치른 사람이 그 과거를 떳떳하게 밝히고 참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면 그를 따뜻하게 감싸줘야 하는 것이 사회의 도리요, 책임이 아니겠는가. 어찌보면 그것은 당사자의 양심과 양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반사회적 혹은 반윤리적 범죄에 해당하는 파렴치범일수록 새삶을 찾기가 어렵고 그래서 재범률도 높다. 이들은 될 수 있는 한 전과사실을 감추려 하고 또 새로운 '먹이' 를 찾아 끊임없이 두리번거린다.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국회의원을 뽑는 자리에서 이런 사람들이 걸러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장발장처럼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까지 싸잡아 도태된다면 그 역시 국가적 손실일 수 있으니 발표하는 선관위나 그것을 참고하는 유권자들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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