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산된 평양음악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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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5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2000 평화를 위한 국제음악회' 가 무산됐다. 보도에 따르면 남측의 한 기획사가 평양공연을 위해 1백만달러의 대가를 사전에 지불했음에도 북측이 서울공연 대가까지 미리 달라고 요구해 쌍방간 이견이 풀리지 않아 음악회가 무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북관련 사업이란 어느 한쪽의 말만으로는 진실을 찾기 어려운 은밀성이 있게 마련이지만 음악회 취소 이유가 보도대로라면 상식선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음악을 통해 남북간의 교류와 화합을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당국의 협력사업 승인까지 받아 추진된 음악회인 만큼 우리는 이 공연의 의의를 평가하고 크게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남북 양쪽의 화합과 상호 이질성 극복을 위해서는 문화예술 교류가 경제협력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상호합의 아래 모처럼 성사될 수 있었던 남북 교환음악회가 공연 직전 대가문제로 무산돼버린 것에 실망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여기서 우선 남북교류협력에서 신의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양측의 미세한 협의내용을 알 수 없어 단안키는 어렵지만 '좋은 일' 을 위한 남북 문화교류가 대가문제로 성사되지 못했다면 서로의 신의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남측에서 보기엔 이미 평양음악제를 위해 1백만달러를 지불한 형편이고 서울공연이 어렵다는 북측 통고를 받고 서울공연을 취소한 마당에 서울공연 대가를 지불하라는 북측 주장은 억지로 비춰진다.

다른 어떤 이유가 음악제 취소로 연결됐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대가문제가 주된 원인이었다면 앞으로 북과의 협력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남측의 부정적 시각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번 음악회뿐만 아니라 어떤 성격의 사업이든 북한측은 교류의 당사자로 아태평화위원회라는 정부 공식기관을 내세우는 데 반해 우리측은 대부분 민간단체나 기업이어서 쌍방 창구가 불균형을 이루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쪽에서는 너도나도 우르르 몰려 '한건주의식' 으로 북과의 교류사업에 매달리는데 북측은 정부 차원의 일원화된 공식창구를 통해 선별적으로 허용함에 따라 이런 불상사가 일어날 소지는 언제나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책임있는 정부의 공식기구를 내세워 대북 교류사업 창구를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업을 남북 당국간 협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좀더 공개적이고 투명한 처리를 해야 한다.

정부가 최근 장밋빛 대북 청사진을 연일 터뜨리고 있는데 북한이 지금같은 태도를 견지하고 우리 또한 교류의 원칙을 바꾸지 않는다면 대규모 대북투자나 '북한특수' 는 공염불에 그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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